안디옥교회는 최초 이방인교회입니다. 최초와 이방인 함께 붙어다니는 이유는 그만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교회가 당시에는 꽤 상징적으로 복음이 어디든 전해질 수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안디옥교회에 바울이 될 사울과 바나바를 세워 1차 전도여행으로 이방땅으로 보낸다는 게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최초 이방인교회이면서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로 안디옥교회가 소개되어 지고 있습니다.
사울과 바나바가 진행한 1차전도여행은 오늘날 터기지역(소아시아)에 교회를 세운 사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예루살렘교회를 넘어서 이방인들 지역까지 전해졌다는 것은 꽤 고무적인 일입니다.
본문에 사울과 바나바의 사역을 방해하는 사람도 등장합니다. 주로 마술사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이들은 나름 당시 그 지역에 영적인 문제를 주관하던 자들이었습니다. 복음이 아마 그들의 영역을 위협한다고 느꼈던것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갈등과 위협 때로는 외면을 동반하는 외롭고 어려운 사역입니다. 모두가 환영하지도 않고 갈등의 중심에 있기도 합니다. 바울을 향해 예루살렘 제자들이 모두가 동의한것도 아닙니다. 바울을 불편하게 여긴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 현재와는 다른 큰 변화의 물줄기를 일으키는 바울의 행위가 맘에 안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비슷하게 경험되어질 수 있습니다.
신학이라는 학문은 삶의 자리에서 필요한 성경, 복음, 교리등을 정리하기위해 발전되어 왔습니다. 삶과 신앙이 일치한 사회에서는 당연히 신학이 으뜸 학문으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여기에 다양한 이름을 붙입니다. 자유주의 신학, 복음주의 신학, 근본죽의 신학, 급진주의 신학 다양한 이름이 붙어서 어느 신학을 지지하는가를 묻는 이상한(?!)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 이상하다고 말씀드리냐만, 모든 신학적 작업들은 그 당시에 그 지역에서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하나님을 증거하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설명하고, 마땅한 교리를 세우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여도 방향은 모두가 똑같다는 것을 잘 모르면 이런 이상한일들을 하는 경우를 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사울과 바나바는 그것을 굳게 믿고 완전히 새로운 곳에 복음을 들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때,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있었겠지만, 하나님이 함께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복음들고 산을 넘어 다닌 것입니다. 이런 노력과 헌신을 무시하지 말고 고귀하게 여기며 그 열매를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떤 책임을 지니고 살아야 할지를 고민해야할 것 같습니다.
중보기도
교회학교와 유스, 청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그리고 담당 사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이들이 곧 복음 들고 산을 넘는 자들이 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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