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바나바의 사역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불과 얼마전까지 바울과 바나바를 신처럼 떠 받들겠다던 사람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런 박해속에 교회는 성장하고 복음을 전하는 바울과 바나바의 열정은 식지 않습니다.
교회의 역사는 박해의 역사라고 합니다. 흔히들 자신들이 처한 박해와 상처로 맺은 열매를 드러내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예전에 친구들과 누가 가장 힘든 군대생활을 했는가에 대한 베틀(?!)이 붙은 적이 있습니다. 다 고생스럽게 군생활을 해서 그런지 자신의 경험외에 다른 친구들의 군생활은 가볍게 느껴졌나봅니다. 아시겠지만, 자신만이 겪은 고난이 가장 힘든법입니다.
바울도 어디까지 전도했봤니?라는 말로 자신의 고난과 박해를 이야기했을 수 있습니다. 우호적이었다가 갑자기 박해자로 돌변하는 사람들을 경험하면 더 힘들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자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보고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의 일은 특별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박해가 사라지고, 고난이 적어진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무관심한 공간으로 바뀌었고, 교회도 그냥 자기들만의 공동체로 세상과 동떨어진 것처럼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요즘은 교회가 교회를 공격합니다. 믿음이 어떠니, 신앙이 어떠니, 교리가 어떠니 뭐 붙일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붙여서 교회를 공격합니다. 복음을 위해 박해를 받는 시대가 아니라, 교회와 교회가 경쟁하기 위해 박해(?!)가 일어납니다.
어제, 일면식이 없는 한 목사님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친구의 아들이 잠깐 두주간에 버클리에서 공부해야 해서 지낼곳을 찾는다고 합니다. 두주잠깐 지내는 곳을 찾는게 어디 쉽겠습니까? 그런데 부탁하고 연락할곳이 없으니 일면식 없는 목사에게 전화해서 부탁을 합니다. 그래도 믿는 구석은 같은 기독교인 목회자인듯합니다. 지금도 이런 마음을 지닌 분이 있다는 것에 따뜻함을 느끼며 열심히 두주짜리 방을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름 동지애라는게 있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함께 기도하고 도우려고 애쓰려는 마음, 그런 마음을 통해 우리들은 성숙한 믿음생활이라는 것을 마침내 이루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서로가 달라도 우리는 같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중보기도
더위에 고생하는 교우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이경무 장로님이 큰 부상은 아니지만, 불편한 부상을 입으셔서 요즘 교회에 못오시고 있으세요. 잘 치유되고 회복되록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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