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모임이든 극단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장 무섭고 잔인한 그룹이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입니다. 바울을 죽이기 전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기로 한 자들이 40명이라고 합니다. 천부장의 말로 보면 바울의 문제는 율법의 이해에 대한 문제일뿐 죽을만한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을 죽이려고까지 하는 자들의 명분은 자신들의 율법을 잘못가르쳤다고 하는 이유 하나입니다.
바울의 율법이해는 큽니다. 당대에 훌륭한 스승의 문하생으로 제대로된 율법과 성경을 공부한자입니다. 이 바울이 예수를 믿게된 것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복음에 대한 확신입니다. 율법은 죄를 드러내집니다. 죄를 구원할 능력은 없다. 바울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한것입니다. 이 것이 유대인들에게는 못마땅한 것이었습니다. 이방인까지 구원받는 다는 이야기를 하니, 유대인들이 더욱 광분해서 극단주의적인 신앙을 가진 자들은 바울을 제거해야한다고 생각한것 같습니다.
반면에 천부장은 바울을 어떻게든 살려서 가이사랴로 이송하려고 합니다. 죽일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가이사랴는 총독의 관저가 있고, 로마의 직할 도시입니다. 그 곳은 소위 치외 법권 지역이었으니 천부장은 그곳에 총독인 벨릭스에게 바울을 가이사랴에 보내는 이유를 편지로 전합니다. 로마 시민권자이니 로마법을 따라 처리해야 한다는게 천부장의 판단이고, 유대인들의 율법문제 말고는 죄가 없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종교적 위협을 정치적 힘으로 막아선 것입니다. 이정도로 극단적인 종교인들의 행위는 무섭고 어쩌면 세상의 질서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담대함과 유대인들의 극단적인 종교적 열정을 비교해볼 수도 있습니다. 이 둘의 차이는 폭력적이냐 그렇지 않냐의 차이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신앙을 가진다는 것, 즉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마련한 평화의 세계와 공존하라고 의미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지키며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일은 우리들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종교적 열정은 주님이 맡기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사용해야지 누군가를 죄인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라고 쥐어준 칼자루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를 드러내는 공간이 되어야 하고 실천하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중보기도
이번주 토요일에 교회에서 소망회 회원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식사와 게임 그리고 저희집에서 2차로 티타임을 가지려고 합니다. 한중금 권사님, 정수봉권사님도 오랜만에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모임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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