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펌킨 라떼가 나오면 가을이라고 말씀드렸어요. 아마, 이 향에 대한 기억이 늘 가을 연상케 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 미국에 와서 학교에서 아이들 행사로 아마 할로윈을 앞두고 펌킨 농장에 간적이 있어요. 그때 가는 길에 스타벅스에서 이 커피를 처음 맛봤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희한하게 이 펌킨 라떼만 생각하면 그때 느꼈던 짙은 가을의 분위기에 흠뻑젖어들게 됩니다.
이걸 “회상”이라고도 하고, 펌킨 라떼는 이를 일으키는 하나의 촉매가 되는 거겠죠.
유대인들에게 제사장의 역할은 종교적 회상을 일으키는 존재였을 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재하는 중재자 역할의 제사장들은 레위지파에서 평생 대를 이어서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으니 아마 타고난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게 한계가 있듯이 이걸 사명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마지못해 하는 사람도 있었을 거에요. 이런 미세한 차이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다양한 문제들이 생겨났을 겁니다. 빡빡한 사람이 제사장일때는 빡빡한 기준을 내세웠을 것이고, 관심없던 자가 제사장일때는 세상 그렇게 넉넉할 수 없었을 것이고, 율법의 기준도 빡빡하기도 또는 넉넉하기도 이런걸 반복하다 보통 종교적 율법은 강력한 판단기준으로 세워지니 실제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중재의 역할이 이제는 사람을 분별하는 감별사로 변질되었을 가능성이 컸을 겁니다. 이런 변화들은 결국 하나님을 알고, 은혜를 알고, 예배를 드리는데 큰 문제를 갖게하고, 사람들이 신앙을 포기하는 결과를 낳았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 시대에 대부분이 신앙적 열심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던 바리새인들, 율법주의자들을 보면 이해가 되실거에요.
이런 것에 익숙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진정한 제사장의 모습으로, 본문은 이걸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이야기하는데, 하나님과 우리의 중재를 한번의 십자가 사건으로 완벽하게 이루어 내신 분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이 내용이 깊이 각인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기본의 제사장에 대한 기억이 이제는 새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기억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죠. 이걸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과 더 좋은 관계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깊이 예배가운데로 나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든든한 주님의 동행하심을 경험하는 우리들도 우리들만의 신앙의 여정이라는 기억을 만들어가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기억해 낼것입니다. 주님이 늘 든든히 함께 하셨다고.
중보기도
찬양대 반주자를 찾고 있어요. 오랫동안 찾고 있는데 속히 반주자를 찾을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이번주 주일 설교 주제는 “용서”에 대한 내용을 나누려고 합니다. 창세기, 로마서, 마태복음의 내용을 같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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