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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9 (목)에베소서 2 : 11~22



유대종교와 기독교의 근본적인 차이는 “어디까지 형제와 자매”로 용납할 수 있는 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이해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예수안에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이방 땅에 교회를 세웠던 바울의 노력은 복음을 확장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율법적인 제한을 넘어서서 어느 누구나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성령안에서 함께 세워져가는 존재로서 바울은 이방인들을 향한 경계와 한계를 넘어선 하나님의 계획과 사랑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해를 통해 우리들이 이해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는 깊은 고민으로 우리를 이끌고 갑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누가 악한가를 판단하려고 하지만, 사실 이 둘의 관계속에서 가장 슬픈 역할을 한 사람들은 방관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강압적인 정책을 핀 양 극단적인 리더쉽들이 결국 선택한것이 전쟁과 테러이고, 이 전쟁과 테러속에 아이들과 여성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서로 극단적인 장면을 연출하면서 사람들의 분노는 커져가고 이런 분노속에서 그들이 고백하는 신의 음성과 방향은 찾아 볼수 없게됩니다.


분노를 사람들을 미워하는 권리를 가져다 주는 것 같습니다. 날마다 전해지는 뉴스에서 상상할 수 없는 전쟁의 상처에 허우적거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들이 고백하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런 자들과 어떻게 화평하게 지낼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됩니다.


바울이 이야기하는 낯선사람들과의 하나님 가족되기라는 이 거룩하고 엄청난 고백에 우리들이 어떻게 응답할지 생각해봐야합니다.


유대종교와 이슬람이 보여주는 파괴와 상처들을 넘어서 기독교가 화합을 위해 희생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러면 기독교는 이들과 다른 큰 사랑과 은혜로 경계를 넘어선 사랑과 은혜를 나누고 있는가? 예수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대적하는데 성경을 사용하는 것은 아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세워져가는 우리”라는 바울의 고백을 깊이 묵상하는 아침입니다.


중보기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사상자가 많아지고, 전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과 여성들에게 집중되고 있습니다.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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