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중에 지혜의 이야기 중 동의할 수 없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20절에 “가난한 사람은 이웃에게 미움을 받지만, 부자에게는 많은 친구가 따른다.” 이 구절 자체로만 보면 물질적 풍요가 지혜인것처럼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간단하게 이해되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구절에 탁 걸려서 본문 전체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지혜롭지 못한 자가 가난하게 된다”는 것과 연결되어서 20절의 구절이 완성되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성경을 읽어내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본문의 전체 맥락을 이해해야 이해되어지는 본문도 있고, 난해한 구절은 여전히 성경을 읽는 독자를 괴롭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한가지 기억해야할 교훈은 그 문장을 그대로 이해하려 들지 말고 맥락에서 이런 구절이 등장하게 된 이유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잠언은 특히 이분법적인 서술로 인해 이해가 간단한듯 하지만, 그 만큼 더 복잡한 내용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어제 감리사 취임예배를 준비하는 미팅을 가졌습니다. 다양한 이해와 요구들이 오가는 가운데 모든 회의를 마치고는 감리사와 한시간을 통화하면서 새로 시작한 업무와 무엇을 도와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지금 연회에서 맡은 일이 감리사의 목회협조위원회와 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 감리사님도 저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십니다.
이야기중에 제가 몰랐던 맥락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련에 경험되어지는 일들의 이유와 배경, 뭐 이런 이해들이 생기면서 드는 생각은 결국 중요한 것은 “교회 목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제가 꿈꾸고 교회가 기대하는 목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유와 배경을 이야기할 때는 걱정이 생겼지만, 기대와 꿈꾸는 것을 이야기할때는 희망이 느껴졌습니다. 이때 깨달은 것은 우리들이 이야기하는 많은 생각과 경험, 그리고 의도와 방향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꿈꾸는 것을 향하는데 노력하는 것”과 일치할때 우리들이 기대에 가득찰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내 생각으로 세상을 소망하는 자와 하나님의 꿈을 소망하는 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지혜를 가진 자가 바로 부자이고, 이런 꿈을 갖지 못하는 자가 가난한자입니다. 적어도 오늘 본문이 이야기하는 가난한자와 부자는 그렇습니다.
중보기도
이번주 주일에 예배 후 담임목사는 콘트라코스타 연합감리교회에 특별강의를 하러 갑니다. 지난주에 말씀 못드렸는데 “트리니티 성경공부는 이번주 휴강”입니다.
목회계획을 위한 설문지를 작성해주세요. https://forms.gle/WeGoem61yomYQxK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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