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지금 있는 곳에서 우연히 아는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대화 중에 2년간에 노력 끝에 교회를 옮기기로 했다고 합니다. 지금 사용하는 예배당은 미국교회를 빌려 쓰다보니, 예배시간이 1시쯤 드리는 것이 교회를 오랫동안 정체하게 된 원인이라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이제 옮겨갈 교회는 교회시설이 좋고 미국교회가 9시예배를 드리니 11시 언저리에 예배시간을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보였습니다.
2년간 설득했다는 말에 쉽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고, 익숙한 것을 변화의 자리로 끌고 가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른 목사님은 미국교회를 목회 하시는데, 임원회 중에 느닷없는 책임공방에 젊은 임원들이 그만두겠다는 문자에 난처하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관계는 어떻게서든 세워 가기 위해, 나이와 권위, 혹은 책임에 대한 불편함을 감내하는 것에 익숙했다면, 이제는 불편한 관계에 자신들의 에너지와 감정을 소비하고 싶지 않은 시대에 살아가는 세대간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교회의 큰 과제라는 것입니다.
만만치 않은 삶들을 살아내는 사역자들, 그리고 교회 제가 느낀것은 나름대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모습에 세상 쉬운 것 없다는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로 느끼는 교인들의 삶은 치열합니다. 일주일 내내 최선을 다해 삶을 살다가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 오시는 분들의 신앙에 큰 감사를 느낍니다. 이렇게 온 교회에서 기쁨과 감사, 감격의 예배를 드릴 수 있다면 좋은데, 이런 저런 책임, 또는 또다른 부담을 가질 만한 헌신을 드려야 하니 내심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어떤 분들은 더 큰 믿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더욱 헌신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믿음과 더 큰 믿음에 대해서 저는 늘 의문이 있습니다.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말씀하신 예수님 말씀처럼, 우리들은 이미 산을 옮길만한 훌륭한 믿음의 사람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시간을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익숙하게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허둥대고, 분주하며, 흔들리기도 하고, 불안해 하기도 합니다.
익숙하게 삶을 살아내는 것처럼 보이는 분들도 있지만, 아마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갈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가득한데, 오늘 본문에서 5절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안에 계신 주님께서는 공평하시어, 부당한 일을 하지 않으신다. 아침마다 바른 판결을 내려 주신다. 아침마다 어김없이 공의를 나타내신다.”
스바냐는 불안한 현실속에 주님을 멀리하는데 익숙한 자들이 승승장구하는 것 같지만, 주님은 매일 새롭게 부당한 일에 대한 판결을 내리신다고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흔들릴만 한 일에 불안하지만, 매일 하나님은 그 손을 우리에게 내미신다는 것이고,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고 주님의 공의로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만만치 않은 삶이지만, 그래도 든든히 동행하시는 손길에 우리의 마음을 맡길 수 있는 든든함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밤새 비가 내렸습니다. 더욱 깨끗해진 하늘에 새로운 것들을 기대하며 마음을 나눕니다.
중보기도
이번주일은 대림절 첫주입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심을 기다림으로 더욱 주님과 든든히 동행하는 믿음의 걸음을 든든히 이어가기를 원합니다.
오린다 캠퍼스를 위한 기도와, 열린교회의 사역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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