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가르치시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기록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그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막11:17)
오늘 본문은 지난주 수요일에 청년들과 나누었던 요한복음과 평행본문입니다. 지난 주일 성서일과의 본문이 요한복음이었는데, 그 본문의 내용이 예수님이 성전을 정화시킨 이야기였습니다.
성전 정화 사건은 예수님이 이례적으로 화를 드러낸 사건입니다. 마가복음 "둘러 엎었다" 정도의 표현이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채찍을 만들어서 둘러엎었다는 표현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정도 화를 낼만한 사건이 무엇일까? 성전 앞에서 장사하는 사람들, 멀리서 제물을 들고 성전에 올수 없는 관계로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성전 장터인데, 처음에는 사람들의 편리로 만들어진 이 제도가 성전화폐를 만들어 세금처럼, 수수료를 챙기는 시스템으로 발전하더니, 시세보다도 비싼 가격으로 제물을 사야만했던 당시 이스라엘 종교적 방향이 결국 가난한 자들에게 더 높은 담벼락이 되어버린 제사에 대한 예수님의 분노였을 것입니다.
이 분노의 출발점은 가난한자와 소외된 자들을 돌보는 기본적인 율법의 방향을 무시하고, 점점 그 담벼락이 높아지는 것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편리함으로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결국 사람들에게 부담으로 가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교회도 결국 만들어진 제도가 사람들에게 신앙적 자유보다는 부담으로 전달되는 것을 우리들은 진지하게 살펴야할것 같습니다. 대표적으로 십일조에 대한 이해가 소득에 십분일은 하나님의 것~! 이라는 단순한 설명은 십일조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하지 못합니다. 구약에서 십일조 개념은 소외되고 어려운 자들 그리고 땅을 분배받지 못한 레위지파를 위한 소득을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십일조의 의미는 십분의 일이라는 개념보다, 이시대에 가장 연약한 자들을 위해서 물질을 헌신하는 개념으로 십일조를 이해해야할 것 같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변화를 요구한다면, 헌금이라는 한가지 목적으로만 헌금의 개념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절기, 기타 다양한 목적을 담긴 헌금은 사실 편리와 기능 그리고 효율성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니 변화하는게 옳은것 같습니다.
그밖에도 많은 것들이 있을텐데, 중요한 것은 신앙적 본질을 벗어나는 것에 우리들은 용기를 내서 포기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거룩한 신앙적 과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순절은 이런 반성과 회복을 기대하는 시간인것 같습니다.
묵상
신앙생활에서 신앙적이지 않으면서도, 부담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중보기도
다음주 월요일 부터 목요일까지 한인총회 임원들이 LA에 모여서 회의를합니다. 교단상황에 대한 점검과 한인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계획과 방향을 정하려고 합니다. 기도해주세요.
어제 목요일에 미팅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목요일 저녁에 줌으로 모이는데,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오늘의 실천
청년들을 위해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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