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4월11일 주일 설교 원고 (부활절 제2주)



요한복음 20:19-31, 사도행전 4:32-35

생명을 얻게 하려고


교회의 위기

1. 어제 새벽예배 때 말씀드렸는데, 위르겐 몰트만이라는 신학자가 오늘날 교회의 위기를 두 가지 원인으로 진단했습니다. 하나는 정체성의 위기이고 또 하나는 소통의 위기라고 합니다.

2. 소통의 위기라는 것은 교회가 교인은 물론이고 교인이 아닌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고, 정체성의 위기는 예수님의 십자가 신학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신학을 외면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희생과 부활의 의미가 교회 안에서 약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3.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부활의 의미는 우리들의 신앙, 우리들의 믿음의 실천, 예수 믿는 자로서 어떻게 살아가냐에 따라 이 세상에 드러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부활에 대한 제자들의 다른 입장

4. 오늘 읽은 본문과 더불어 사도행전 4장32-35절 말씀도 함께 나눌 텐데, 아마 당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경험한 교회와 믿는 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지금 읽은 본문을 통해서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제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를 살펴보고, 사도행전은 부활 사건을 경험한 이후에 성령 받은 교회들이 어떤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했는지를 확인함으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부활 신앙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5. 우선, 조금 전에 읽은 본문은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 제자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6. 19절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식을 들었어도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문을 꼭 잠그고 숨어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7. 이 말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제자들도 신뢰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어쩌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이 제자들에게 당장 닥칠지 모르는 핍박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지는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8. 20절에서는, 예수님이 두 손과 옆구리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자”, 제자들이 바로, “기뻐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9. 이런 상황에 “도마”가 등장합니다. 이 도마는 여전히 “들려준 이야기”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10. 25절에 보면, 제자들이 “주님을 보았다”는 것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데, 도마는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이 직접 못 자국 난 손과 옆구리에 손을 넣어봐야” 믿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11. 요한은 예수님의 부활을 “들음”으로 믿는 자와 “봄”으로 믿는 자 그리고 “직접 경험해야 믿겠다는 자”들이 초대교회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2. 28절에 도마가 직접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만지고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을 하지만, 29절에서 예수님이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말씀으로 요한복음 기자의 부활 신앙에 대한 메시지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아픔이지만 너무나 많은 해석들

13. 이번 주 금요일이면 4월 16일 됩니다. 7년 전 4월16일에 세월호가 침몰했습니다. 476명 탑승자 중 172명이 구조되고 실종자 포함 304명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14. 세월호 사건은 대한민국을 크게 흔든 사건이었습니다. 특히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 학생들이 대부분 사망자였기 때문에 그 안타까움은 크고, 멀리 사는 우리들에게도 큰 아픔과 슬픔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15. 잘 아시는 것처럼, 우리들이 기억하는 세월호 사건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우리에게 투영되었습니다. 정치인들은 정치적으로, 정부는 정부 나름대로, 진보적인 사람, 보수적인 사람 나름대로 자기들의 안경으로 세월호 사건은 다양하게 우리 사회에 투영되었습니다.

16. 어느 것이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만들어내는 안경을 거둬내면, 분명한 것은 배가 침몰해 가장 꽃다운 나이에 많은 아이들이 죽게 되었다는 것, 이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은 너무 큰 상처가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것, 이 사건의 원인은 어른들의 절제되지 않은 욕심이 원인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7. 7년이 지난 지금, 우리들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이유는 이 아픔을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는 다시는 이런 일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제는 어른이라고 불리는 세대를 사는 우리들이 적어도 이런 잘못된 방향에 삶을 정하지 않겠다는 마음과 다짐을 위해서 이 기억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8. 그러니 여전히 우리는 이 아픔에 자유로울 수 없는 것 같습니다.

19. 불과 7년 전에 일어난 사건에서도 이런저런 서로 다른 해석들이 존재하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경험하는 제자들과 사람들의 반응이 여러 가지였다는 사실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20. 특히 요한 공동체는 이 사실을 숨기지 않고 당시 교회와 이후 요한복음을 읽어낼 모든 사람에게 이 사실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부활을 들음으로 믿는 사람이 있고, 봄으로 믿는 사람도 있고, 여전히 자신이 확인하지 않고는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하지만, “들음으로 믿는” 것이 복되고 이를 기록한 이유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는 것을 목적으로 이 본문을 기록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부활 이후 교회의 모습

21. 사도행전에 보면, 부활을 경험한 교회가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22. 사도행전 4장 32절에서 35절 말씀을 보면, 부활을 경험한 제자들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교회 공동체”가 생겨났는데, 이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3. 우선, 많은 성도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자기 소유를 함께 나눠 사용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음에도, 당시 초대교회 교인들은 한마음과 한 뜻으로 함께 더불어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24. 이런 분위기에, 사도들은 늘 부활하신 예수를 증언하였고, 사람들이 모두 다 큰 은혜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증거하는 것, 이것은 곧, 은혜의 수단, 은혜의 통로로 교회에 중요하게 자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활의 증거를 통해 성도는 은혜를 경험한다.

25.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으로 은혜를 경험하는 공동체라는 의미입니다.

26. 이런 은혜는 다음과 같은 실천으로 이어졌습니다. 34절에, 예수를 믿는 성도들 가운데에서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고”,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팔아다가 사도들에게 주었더니, 사도들은 필요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7. 부활의 증거와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함께 나누어 쓰는 것은 어떤 연관 관계가 있을까?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중요한 실천 중의 하나가 가난한 자를 모른 척 하지 말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이런 가르침에, 사도행전은 실제로 예수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이 부활 사건을 경험한 이후에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과 나누었고, 교회 안에 가난한 사람들이 없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28. 교회의 이 증거는 세상 사람들이 교회와 교인들을 주목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29. 당시의 재산의 개념은 오늘과 달랐습니다. 특히 땅의 소유 개념은 희년법에 의해서 50년이 지나면 다시 땅을 분배하는 희년법이 존재했던 시기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이야기하는 소유와 당시의 소유 개념은 다르다는 것을 우선 이해하셔야 합니다.


부활의 신앙으로 받은 은혜: 함께 사는 것

30. 하지만, 우리들이 이 본문을 통해 기억해야 할 것은 당시 부활을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안에 “가난한 자들이 없게 하도록”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소유를 함께 나누었다는 것도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함께 밥 먹는 자리에 숟가락 하나 얹어놓는 마음과 여유가 있었다는 것이고 이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했다는 의미입니다.

31.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들이 매주 드리는 헌금도 이런 비슷한 정신과 고백으로 드려져야 합니다.

32. 구약의 십일조 개념은 어렵고 힘든 자들을 위해 드리는 사회적 안전장치를 위해 만들어진 율법입니다. 십 분의 일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 것을 나눔으로 함께 살아가는 사람 중에 어렵고 힘든 자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의미로 십일조 이해하고, 숫자보다는 십일조 정신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33. 부활하신 예수님을 고백하는 성도들이 마음이 하나가 되어 함께 더불어 살았다는 것은 “공동체 안에 가장 연약한 자를 돌보는 것을”을 구체적으로 삶으로 살아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34. 다시 말해, 제자들이 증거한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성도들이 “은혜”를 받았다는 의미는 머릿속으로 생각하기만 했던 것들이, 혹은 당연히 옳다고 여기는 것들을 생각으로만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 생각하고 마음에 품은 것들을 실천하게 되었다는 것을 “은혜받았다”라고 표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받은 은혜: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것

35. 이들이 받았다는 은혜는 “말씀으로 듣기만 했던 것을, 삶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삶을 살 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36. 우리들이 사는 이 시대에, 우리들 또한 “부활 신앙의 고백”을 통해 “평소에 실천해야 할 성도의 삶, 교회의 방향”을 확인하고, 서로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누는”,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로서 교회를 이 땅에 보여주기 노력해야 합니다.

37. 세상이 아파할 때 교회도 함께 아파하고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실천하고, 지금처럼, 코로나바이러스로 어려운 시기를 살아내는 이때, 교회는 지금까지 세워온 우리들의 전통을 드러내기보다는 아파하는 자들과 함께 아파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실천할 수 있도록 우리의 믿음을 세워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부활의 신앙을 갖는 교회의 참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8. 초대교회나 지금 우리들이 섬기는 교회나 교회의 모양은 비슷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나 지금 우리들이나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기쁨과 능력은 똑같습니다.

39. 그러니 우리 마음을 모아, 세상과 더욱 깊이 소통하고, 십자가의 본질을 드러내는 교회로서 교회가 교회답게 세워지도록 노력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0.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에 교회가 어떻게 변화될지 걱정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인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는 것부터, 교회가 이제는 온라인으로만 존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에 이르기까지 걱정과 우려는 지속해서 우리에게 질문할 것입니다.

41.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자면, 우리들은 지속적으로 부활의 신앙을 고백하고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며, 우리들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혹은 생각으로만 가지고 있던 것들을 이제는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이 땅에 드러내 보이는 것을 통해 우리의 걱정과 우려는 사라질 것입니다.

42. 두려워 숨어있던 제자들이 담대하게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생명을 다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43.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은혜받은 교인들이 서로가 서로 하나됨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세워간 것처럼, 우리들도 이 어려운 시기를 넘어서 변함없이 함께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지금까지 꿈꾸고 생각으로 가지고 있던 것들을 실천함으로

44. 온전한 기독교 공동체를 세워나가기 위해 함께 노력하심으로 새롭게 다가오는 시대에 새로운 희망을 나누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210411_요한복음20장19절-31절
.pdf
PDF • 260KB

조회 15회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