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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열린교회BKUMC

4월18일 부활절 제3주, 주일 설교원고




요한1서 3:1-7

평화가 있으라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가?

1. 제가 가끔 깊은 주목을 하는 것은 공동체에서 어떤 이야기와 어떤 미래를 만들어가냐?는 것에 있는 것 같습니다.

2. 지난 한 주간 3일 동안 “한인 총회”에 참석하면 미국에서 목회하는 한인 연합감리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고, 어떤 미래를 세워가려고 하는가?”에 대해 관심을 두고 주목하면서 몇 가지 질문들이 생겼습니다.

3. 지금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써가고 있고,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가?


생각지 못한 어려움

4. 아마 오늘 나누는 말씀은 이 질문과 함께 성경을 통해 그 답을 찾으려는 노력들이 어떻게 함께 녹아졌고, 이 노력들은 초대교회에서 신앙 생활했던 신자들의 질문을 통해 그 답을 찾는 여정과 순례의 과정을 확인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5. 처음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시는 분들이 겪는 어려움 중에 의외로 “언어”적인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흔히 교회 용어라고 불리는 것들인데, 그 용어들을 처음 들으면 무슨 뜻인지 쉽게 와 닿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6. 예를 들어 “은혜받았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처음 신앙생활 하는 분들은 “은혜를” 선물처럼 받는 것인지, 마음이 따뜻해지면 은혜를 받았다는 이야기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7. 또 하나 조금 있으면 “성령 강림절”을 보낼 텐데, “성령 받아야 한다”는 말도 성령을 받는다는 게 머리에서 오는 것인지, 눈물을 흘려야 오는 것인지 정확하게 이해 못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8. 조선 말기에 선교사들의 기록을 보면, 조선에 복음을 전하려고 온 선교사들이 씨앗을 뿌리는 것을 위해 왔는데, 오히려 열매를 거두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한 기록이 있습니다.

9. 이미 중국으로부터 복음의 씨앗이, 성경이 전해지면서 들어왔는데, 특히 보부상들이 누가복음, 쪽 복음을 들고 다니면서, 좋은 말씀이라고 전해주면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10. 어느 날 선교사들이 이런 사람들을 모으려고 소식을 전했더니 모이는 사람들 중에 나무 십자가를 깎아서 등에 지고 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왜 나무 십자가를 지고 오셨나요?”

11. 누가복은 14:27에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을 읽고, 늘 십자가를 지고 다닌다는 대답에, 선교사들이 그 순수함에 감동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려움을 품으면 우리의 이야기와 미래를 쓴다.

12. 재미있는 이야기 같은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성경이 문장으로는 익숙한데, 삶으로는 익숙하지 않은 경우를 보면, 많은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13. 비슷하게, 교회에서만 사용하는 친교 용어들이 처음에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형제, 자매로 부르는 것도 처음 교회에 오신 분들은 낯설 것이고, 고민되는 상황에서는, “기도해 보겠습니다.”라는 말로 거절의 의사를 밝히기도 합니다.

14. 개인적으로는 거절의 의사로 “기도해 보겠다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적절치 않습니다만, 교회는 이미 이런 문장을 사용하는 것에 익숙해 있고, 새로 오신 분들이나, 신앙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는 분들은 이런 문장의 의미와 숨겨진 뜻을 파악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15. 오늘 읽은 요한1서는 요한복음을 기록한 요한의 세 가지 편지 중 첫 번째 편지로 읽혀지고 있습니다. 요한1서의 정황은,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한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예수님의 의미, 사랑의 의미, 교회의 의미, 십자가의 의미, 대속의 의미등 우리들은 이미 기독교 하면 친숙한 내용들을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다르게 표현하면, 좀 더 교인들에게 익숙한 용어로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16. 그러니, 익숙하지 않은 문장, 혹은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에 부딪혔다면, 좀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해서는 질문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되고, 교회 공동체는 늘 이를 응답하기 위해 노력해야합니다.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분들에게는 그분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이야기 할 수 있어야, 우리들은 함께 우리 공동체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고, 우리 교회의 미래를 준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7. 이런 의미에서 보면, 복음서나, 바울서신이나, 오늘 읽은 요한의 서신을 읽을 때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옛날에 초대교회를 위해서 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내용들이 초대교회와 처음 그 교회에 함께 하는 성도들을 위해 교회가 함께 나눌 이야기, 그리고 그들이 꿈꾸고 있는 교회와 신앙생활을 세워 가기 위한 노력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한 공동체의 이야기와 미래: 우리는 하나님 자녀

18. 요한복음은 지난번에 말씀 드린 것처럼, 거의 100년 쯤 기록되었다고 하니까, 요한1서도 비슷한 시기에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 요한복음은 당시 예수님의 행적, 말씀을 통해 초대교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기록하고 해석하는 내용들이었다면,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20. 앞서 말씀드린 대로, 교회의 용어, 다르게 표현하면 복음의 의미에 아직까지 익숙하지 않은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 무슨 의미인가? 에 대한 설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21. 1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라고 불러주셔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 아버지의 큰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2. 요한이 고백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함축적 의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특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비롯된 결과임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23. 이어지는 말씀에 “세상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모르는 이유는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전하고 있는데, 요한의 이같은 고백은, 실제로 당시 “교회”가 그리고 “성도”가 핍박을 받는 현실적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요한의 응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4. 100년 정도 시간이 지난 초대교회는 질문도 다양해지고, 여러 가지 영역에서 준비해야 할 신학적 정리들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25. 그중에 요한이 집중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인데, 여기서 사랑은 “아가페”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아가페적인 사랑의 결과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정의합니다.

26.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핍박을 당하는 이유에 대해서 요한은 “하나님이 알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응답하고 있습니다. 당시 요한 공동체의 배경을 생각해보면,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만, 정확하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으로 인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27. 다시 말해, 핍박은 “정확하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고 하지 않고, 자신이 이해한 것, 자기가 아는 것을 강요하는 것”으로 이해 벌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8. 2절에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하나 더 나눕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 우리에게 당장 특별한 것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29.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될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라는 말씀은, 밝혀지지 않다는 것이 불확실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즉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는것을 깨달으면”, “하나님 자녀의 의미”가 환하게 밝혀진다는 것입니다.

30. 기대에 찬 마음으로 교인이 된 성도들의 고민은 교인이 되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궁금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31. 예수를 믿고, 박해에 노출된 성도들의 고민은 “그리스도인이 됨”은 “고난스러움”에 가깝다는 생각에 여러 가지 질문이 생겼을 것입니다.

32. 그중에 하나가 “우리는 무엇이 다른가?”라는 질문에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 그리고 그 자녀의 의미는 지금 현재에 일어나는 특별함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할 때” 앞으로 다가올 변화에 대한 기대가 중요함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33. 그렇다고 먼 미래에만 “하나님의 자녀”의 열매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3절에 보면, 요한은 이런 “소망”을 두는 사람은 “깨끗하게 된다”는 고백으로 현실적 혹은 지금 당장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34. 여기서 기록한 “소망”은 ἐλπίς _ Elpis라는 단어를 번역한 건데, 그냥 갖는 소망이 아니라, “기쁨에 찬, 확신을 가진 소망”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깨끗하게 된다”는 말도 비유적인 표현으로 “성화” 즉 “거룩하게 되어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5. 요한이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미는 현재적 의미와 미래적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떤 마음과 어떤 은혜가 있는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36. 현재적 의미로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소망”을 갖게 되는데, 우리들이 “거룩해지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변화”를 소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소망은 “기쁨과 확신에 찬” 소망을 품고 사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자녀” 즉, 예수를 믿는 우리들이 이해 해야 할 그리스도인 자녀의 의미입니다.

37. 미래적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늘 “주님이 함께하시는 것처럼 이 땅을 살아가면” 정확하게 어떤 모습이 그리스도의 자녀인지는 모르지만, “예수님처럼 우리들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품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38. 현재적 의미든, 미래적 의미든,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은 모두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9. 아마, 초대교회 교인들의 고민은 “예수님을 믿고 어떤 변화가 우리에게 일어나는가?”에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박해가 심해질 때면,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계속해서 예수를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이어졌을 것입니다.

40. 이런 질문과 고민 앞에 요한은 그리스도인, 예수 믿는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정의하고 지금이나, 앞으로나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일어나는 신비적 사건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꿈: 우리의 꿈

41. 요한이 꿈꾸는 교회와 성도는 “그리스도와 교회가, 그리스도와 성도가”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처럼 사는 것, 그리고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자녀에게 부여되는 축복”이라는 것이 요한의 고백입니다.

42. 7절 정도 되는 말씀이지만,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교회와 성도의 자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43. 첫 번째, 요한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언어적 혹은 이해가 부족한 부분을 잘 설명함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예수를 믿는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초신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는 뜻입니다.

44. 이것은 “주어진 질문과”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라는 고민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도는 늘 질문할 준비를 해야 하고, 교회는 늘 응답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45.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는 우리들은 현실적 소망, 즉 기쁨과 확신이 가득한 소망을 품으로 “거룩해지는 삶”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46. 마지막으로, 이런 소망과 확신을 통해 “우리들이 곧 그리스도처럼 되는 삶”을 이루어가며 살아가는 존재로 이 땅을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47. 그러니, 우리들이 함께 세워가야 할 이야기는 “내가 바로 예수 믿는 사람으로” 기쁨이 가득한 확신이 충만한 소망을 품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세워가야 합니다.

48. 우리들이 지금 부딪히는 어떤 현실에서도 이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49. 코로나바이러스로 복잡하고 미래를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 변함이 없기 때문에, 우리들은 기쁨과 확신으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50.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리고 우리 교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뻐하며 이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확신함으로 이 시간을 채워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51. 또한, 우리들이 이런 시간을 채워가며 미래를 꿈꾸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이 땅을 살아가는 존재로 드러나야 하고, “그리스도와 같다는 고백”이 우리들의 살아있는 소망이 되므로,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야 합니다.

52. 어떤 시대이든, 어떤 상황이든, 고난스럽고, 앞을 알 수 없는 시간에 부딪히든,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자녀” 된 저와 여러분은, 그리고 우리 교회는 주어진 시간을 기뻐하고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을 드러내야 합니다.

53. “평화가 있으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숨어있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첫 번째로 건넨 문장입니다. “평화가 있으라” 이 말씀은 우리들의 현재적 고백이고, 미래적 고백이어야 합니다.

54. 주님이 주시는 평화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 그리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들의 삶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어떤 상황이 우리들의 삶에 몰려와도 기뻐하고 확신을 갖는 소망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우리들의 삶을 드려야 합니다.

55.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고, 우리들이 이 땅을 살아가는 마땅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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