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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일 주일설교 원고, 종려주일



이사야 50:4~9

주님께서 나를 도우시니


1. 오늘 우리는 사순절기를 마무리하는 종려주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종려주일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때 “호산나 다윗의 아들”이라고 외치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던 것을 기억하고 지키는 절기입니다.

2. 개인적으로 고난주간 전에 마주하는 이 종려주일에 대해서 오늘날 교회가 가볍게 스쳐지나 듯 지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아마, 하루 고난주간을 앞두고 곧 그 다음주가 부활절이니, 그 전주인 종려주일이 크게 의미 있게 공동체에서 나눠지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4. 하지만, 우리들이 종려주일을 통해 예수님 시대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들에게도 중요한 지점을 멈칫하게 하는 나름 종려주일의 중요한 의미를 깊이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5.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을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열혈이 열광했던 이들이 불과 몇일 안돼서 무섭게 예수를 죽이라는 군중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충격적인 사건이고, 그 안에 잠재된 우리들이 알게 모르게 거울처럼 비취는 우리들의 모습을 확인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6. 믿음의 본질은 우리를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하기 위한 노력하는 행위가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신약시대에 제자들이나, 초대교회의 교인들이나 지금 우리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는 노력으로 믿음을 갖고, 믿음생활을 하며, 신앙을 든든히 세워가려고 노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7. 하지만, 생각보다, 이런 행위들이 개인적인 차이 혹은 문화적인 차이 그리고 본질을 망각한 나머지 방향을 잃어버리면 믿음이 아닌 엉뚱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될 수 있습니다.

8. 대표적으로 예수님을 다윗의 왕으로 칭송하던 자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라는 성난 군중으로 바뀐 것은 그들이 기대했던 것과 예수님의 방향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9. 그러니, 믿음은 내가 기대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행위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과 상관없는 때로는 부담스럽고 해내기 어려운 것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 그러므로 종려주일이 우리들에게 주는 의미는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살아가는가?에서 돌아서서, 혹시 내가 편치 않는 방향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은 아닌지는 살펴보는 중요한 신앙의 지점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11. 4세기에, “에제리아”라는 여성 수도사가 성지를 순례하면 함께 신앙생활하던 자매들에게 보낸 순례편지가 지금도 남아있는데 이를 “에제리아 순례기” 혹은 “에게리아 순례기”라고 부릅니다. 이 순례기에 보면, 예루살렘 초대교회에서 종료주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2. 그 기록을 보면, 예루살렘 모든 기독교인들이 종료나무가지를 들고 감람산에 모여서, 성묘교회까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양하라”라고 찬양을 하면서 행진을 했다고 합니다.

13. 사람들이 이렇게 행진하며 찬양을 한 것은 성서사건을 재현하는 동시에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길을 최대한 충실히 따르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그 충성은 단지 머리와 입의 공허한 충성이 아니라 우리의 손과 발로 행해지는 구체적인 순종이라는 것을 이날 예배 찬송과 행진이 보여줍니다.

14.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종려주일에 교회가 묵상해야 할 특별한 지점이 있습니다. 이 날은 예수님께서 왕 같이 예루살렘에 입성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군중의 환호와 축하를 받으며 입성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들 모두 예수님을 외면해 버립니다. 심지어 제자들도 주님을 외면합니다.

15. 이 문제가 오늘 우리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옵니다. 혹시 우리도 분위기가 바뀌면 그리스도를 외면하지는 않습니까? 열정적인 우리의 신앙은 일시적인 것일까요? 우리는 신실한가요? 나와 우리의 교회는 예수님을 정죄한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태도와 다를 게 무엇일까요? 종려 주일에 깊이 생각할 질문입니다.


16. 이 질문과 함께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은 고난 받는 종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17. 오늘은 오랜만에 성서일과에서 제1독서인 구약성경의 본문을 읽었습니다.

18. 제 2독서는 빌립보서 2:5-11 말씀으로 바울은 예수님이 스스로 자기를 비우신 하나님의 아들을 고백하며 스스로 종의 모습을 취하셨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19. 기독교의 가장 큰 신앙고백은 비워냄과 사랑이라는 사실을 바울은 크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는 가장 힘있는 것이 종교적 힘이라고 이야기하는 반면에 기독교는 스스로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하신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20. 이것이 우리들이 늘 지키고 전해야 할 기쁜소식 즉 복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21. 제3독서 마가복음 27:11-54로 실제로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어떻게 비워내고 어떤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는지 구체적인 고난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라도에게 재판 받는 장면부터 십자가에 달린 장면까지 본문은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22. 가장 연약한 모습이지만, 가장 큰 사랑의 모습으로 드러내는 하나님의 사랑, 그 은혜를 마가복음 기자는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23. 여기에 다시한번 우리들이 확인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들이 기대하는 방향이 아닌 전혀 다른 방향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24.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드러내는 것, 신앙생활을 하는 방향을 설정해주는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25. 우리들은 늘 예상하고, 진단하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그런 예상과 판단과 진단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과 일치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특히 교회 공동체안에서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이런 행위를 해야 합니다. 이 행위의 방향은 우리들이 그토록 노래하듯이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방향은 내 생각과 전혀 다르게, 전혀 예상치 못하게 올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26. 이 내용을 충분히 묵상하고 기억한다면, 우리는 절대로 교만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 만이 최고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27. 최근 들어 교회가 교회의 적이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실제로 요즘 새롭게 시작하는 교회들이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선택된 교회라고 강조하면서 전도활동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28. 이런 어처구니 없는 행위속에는 기존교회를 흔들어 자신의 공동체를 불리려는 의도가 담겨져 있습니다.

29. 더 이상 믿지 않는 자들의 전도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주저없이 교회를 타겟으로 자신의 교회에 사람들을 끌어 모으려는 행위를 두려움없이 행하고 있습니다.

30. 우리들은 이런 뻔한 행위를 하나님의 방향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적어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자 결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흔들어가며 자신들이 공동체를 채우려는 자들의 행위를 부당하고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31. 꽁잡는게 매라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공동체에 사람을 채우려는 행위는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기독교신앙을 천박하게 하는 행위입니다. 겉으로 열정으로 보이겠지만, 그 숨은 방향에는 천박함이 묻어나는 것을 우리는 경계해야합니다.

32.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방향은 우리들의 일반적인 예상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이야 말로 우리의 모든 기대와 방향을 전환시킨 사건임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33. 힘있는 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셨고 부족한 자를 들어서 사용하셨습니다.

34. 교회는 하나님의 이런 방향을 늘 기억하며 세워져가야 합니다.


35. 오늘 읽은 본문은 이사야 본문중에 고난받는 종에 대한 노래로 세번째 노래입니다.

36. 4절에 보면,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는 방법 세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가 계시라고 이야기드렸지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방법이라고 하는 것이 더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37. 4절 본문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38. “주 하나님께서 나를 학자처럼 말할 수 있게 하셔서, 지친 사람을 말로 격려할 수 있게 하신다. 아침마다 나를 깨우쳐 주신다. 내 귀를 깨우치시어 학자처럼 알아듣게 하신다.”

39. “학자”라고 본문은 번역했지만, 원어 성경은 “입술”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아마 말할 수 있는 입을 주셨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40. 이 고난 받는 종이 말할 수 있도록 그 입술을 허락 하셨다는 것입니다.

41. 이 말은 하나님이 이 종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할 수 있는, 아니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42. 이런 능력을 갖게 될 수 있는, 첫번째 이유는 “지친 사람을 말로 격려할 수 있게 하신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는 말을 하기전에 먼저 동병상련의 함께 아파할 줄 아는 감수성이 있어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43. 옆에 사람이 아픈데 애써 모른척하는 공동체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옆에 사람에게 무관심한 사람은 절대로 온전한 기독교인의 삶을 살수 없고, 하나님의 뜻은 절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44. 두번째로는 “아침마다 나를 깨우쳐 주신다”는 것처럼, 하루를 시작하는 첫 시간을 말씀으로 시작하는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영어성경도 깨우쳐 주신다는 것을 Awaking으로 번역했습니다. 원어성경에는 여기에 자극하다, 위로 들어올린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45. 말씀을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이키고, 깨우치고, 자극해야한다는 것입니다.

46.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자신을 어웨킹하지 않으면, 자극 받지 않으면, 들어 올려지지 않으면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한다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47. 그러니 늘 하루 처음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함으로 스스로를 깨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48. 마지막으로 “내 귀를 깨우쳐 주신다”는 말인데, 이 말은 자기안의 소리와 하나님의 소리를 구별할 줄 아는 열린 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열린귀는 “침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49. 원어성경은 “귀를 깨우쳐 주신다”를 “확장된 귀로 듣게 한다”는 문장을 사용했습니다. 이 말은, 말하는 것을 멈춰 서서 듣는것에 열중하라는 의미입니다.

50. 그러니, 침묵으로 듣는 것을 열중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51. 루터는 ‘열광주의자들은 소란스러운 귀와 훈련되지 아니한 혀를 갖고 있으며, 때로는 거짓말도 곧이 곧대로 믿고 말씀에 맞서기도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에 대한 지나친 자기 확신은 자신을 절대화함으로 신의 자리에 올라서는 죄를 저지른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52. 저는 오늘 우리들이 정확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바르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 본문을 나누고 싶습니다.

53. 침묵하지 않는 자에게 바른 하나님의 음성을 들릴리 없고, 말씀을 통해 자신의 삶을 깨우치지 않는 자가 하나님의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옆에 있는 자의 아픔을 외면하는 공동체는 더 이상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임을 기억해야합니다.

54. 이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도 우리들은 “때리는 자에게 등을 내주고”, “모욕을 당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55.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지 않고, 모욕을 당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서”,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방향을 잘 알기때문에 “주님께서 나를 도우신다”는 것을 잘 알기때문에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56.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방향을 정확하게 마음에 품으시고, 그 방향대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떤 고난에도 주님께서 나를 도우신다는 확신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57. 예수 믿으면 주님이 받으신 고난 속에 동참한다는 의미입니다. 혹시 예수 믿고 천국가는 것 복 받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다면 이제 옆에 있는 사람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말씀으로 늘 자신의 삶을 깨우치며, 침묵속에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노력으로 “주님이 나를 도우신다”는 확신가운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58. 지금 우리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도전에 물러서지 마시고, 우리가 함께 은혜를 나누는 이 자리에서 우리의 삶을 일으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59. 하나님이 나와 함께할 자를 찾으시는 시대라고 합니다. 엉뚱한 것에 나만 옳다 주장하는 거짓된 복음을 주장하는 것에 맞서 올바른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교회를 세워가는데 함께 노력하는 열린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60. 다른 이의 아픔을 돌볼 수 있는 마음이 있는 그리스도인은 다른 교회의 사정을 도울 수 있는 교회공동체를 세워 갈 수 있고, 스스로를 깨우쳐 바른 하나님의 방향속에 생명을 던져 든든히 우리의 신앙을 세워가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61. 그러니, 좀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묵묵히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세워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도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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