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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열린교회BKUMC

4월30일 부활절 4주, 주일설교




요한복음 10:1-10

선한목자 예수


1. 2차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은 성경을 근거로 했다는 것은 충격적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반 유대정서를 끄집어내는데 사용되었던 본문입니다.

2. 1절에, 문이 아닌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자들을 “도둑”이요 “강도”라고 말씀 하시는데, 전통적인 해석으로는 이 도둑과 강도가 바로 바리새인들 혹은 유대종교지도자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 바로 이 해석을 통해 반유대적인 정서가 만들어졌고, 이로 인해 홀로코스트가 정당화 되었다는 점에서, 오늘 읽은 본문을 가볍게 읽을 수 없게 하는 것 같습니다.

4. 본문의 내용은 6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예수님의 전형적인 비유로 읽혀질 수 있습니다. 비유로 번역된 헬라어 “παροιμία paroimia, “파로미아”는 다른 복음서에서도 “비유”로 번역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숨겨진 표현” 또는 “고상한 생각” 으로 이해하는 것이 요한복음 저자의 의도와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5. 비유로 본문을 보면, 도둑과 강도는 눈에 띄는 적대자를 향한 경고로 읽혀지지만, 그 안에 더 깊은 뜻과 숨겨진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6. 이 말은 도둑과 강도를 단순히 유대종교지도자로 이해하면 안되고 그 안에 더 깊은 대상, 혹은 의미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본문을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7. 워렌 카터라는 성서학자는 이 도둑과 강도는 바리새인이나 유대종교 지도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 세계 패권을 쥐고 있던 “로마”와 그 추종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단순히 종교적 해석에만 머물지 말고 정치,사회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습니다.

8. 당시 로마는 분명히 제국 주의적인 통치자였고, 이스라엘은 식민지로서 착취와 드러나지 않는 억압에 눌려 있었을 것입니다.

9. 이런 상황에서 요한복음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백을 좀더 현실적인 삶의 자리에서 “과연 예수는 우리에게 어떤 분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0. 분명한 것은 당시에 “도둑” “강도”같은 자들에게 사람들은 위협을 당했고, 자신들의 것을 빼앗겼으며 이런 현실을 초대교회는 마주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1. 좀더 깊이 생각해보면, 도둑과 강도는 누군가가 누군가를 억압하거나 해를 가하거나 하는 행위를 하는 자들로 확장해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2.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목자”라는 개념과 함께 7절에서 “양들이 지나 다니는 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3. 1절에서 6절까지는 예수님이 목자이고 이를 따르는 양들이 우리들이라는 전통적인 “예수님은 목자”라는 개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4. 목자는 분명히 양 울타리에서 “문”을 드나드는 자로 도둑과 강도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15. 또한, 이 목자는 3절에 보면, 양들을 하나 하나 이름을 불러서 이끌고 나간다고 이야기합니다.

16. 보통 목자가 양의 이름을 짓는 것은 양들의 부족한 특징을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17. 예를 들어 귀가 짝짝이면 “짝짝이”라고 부르고, 다를 절면 “절름발이”라고 부르고, “꼬리가 못생기면” “못난이”라는 식으로 부르는 게 목자가 양의 이름을 짓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18. 여기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를 때, 우리의 강점을 따라 부르시기보다는 우리의 부족한 점을 잘 아시고 우리를 부르실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9. 우리들은 잘하는 것, 강한 것에 집중하지만, 사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이런 강점과 내가 잘하는 것과 상관없이 우리의 약점을 잘 알고도 부르셔서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합니다.

20. 그리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기억하고 따른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자의 음성이 아닌 것에는 절대로 따라가지 않고 달아난다고 합니다.

21. 이 구절을 통해 우리들의 삶의 방향은 정확하게 드러나집니다. 주님의 음성을 쫓아 가는 존재가 우리들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이 아닌 것에는 절대로 따라가지 않고, 오히려 그 방향에서 달아나려고 노력해야합니다.

22. 오늘날, 우리들이 길을 잃고 방향을 잃어 버리는 것은 주님의 음성을 쫓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3. 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에 손가락질을 받는 지경에 이른 것은 교회가 주님의 음성을 쫓아가지 않고, 다른 음성을 따라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4.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분명히 예수님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 길을 따라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미 우리들이 이 길이 어떤 길인지를 잘 알고 있고, 매주 예배를 통해 그리고 봉사와 헌신을 통해 그 길을 찾아 가고 있음을 저는 믿습니다.

25. 예수님이 목자시고, 우리들이 양과 같다는 것은 단지 우리를 돌보시는 목자 예수님만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족한 점을 잘 알고도 우리를 부르시는 분이신 예수님 그리고 우리들은 그 음성만을 쫓아 삶을 살아내는 존재라는 분명한 고백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의미라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26. 6절에 보니까, 예수님의 이 숨겨진 이야기를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7절부터는 예수님이 다른 말씀을 전하십니다.

27. 7절에 보면,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28. 예전에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나는~ 누구이다”라는 “에고 에이미”라는 헬라어 문장을 많이 사용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29. 오늘 읽은 본문에 “예수님은 목자시고” 또한 “예수님은 양이 드나드는 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30. 앞선 본문의 내용을 통해 우리들은 예수님이 곧 문이라는 것은 기존의 있던 것과는 다른 통로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31. 이 문을 지나다니는 자는 목자이고, 이 문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고, “꼴”을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꼴”은 “양식”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매일 먹어야만 하는 것, 이것을 꼴로 표현했습니다.

32. 전혀 목자와는 다른 존재로서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이 양들이 드나드는 “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33. 이 문장은 앞서 강도와 도둑이 문이 아닌 다른 곳을 넘어다니는 존재와는 대조적인 존재로서 예수님을 스스로 지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34. 다시말해,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지금 하시는 것이 아니라, 강도와 도둑과는 달리 예수님이 바로 이 문이라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가는 길 만이 도둑과 강도의 위협에서 피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35. 눈으로 드러나지는 내용은 바리새인들이나 다른 종교지도자들과는 다른 새로운 문, 새로운 길을 예수님이 드러내 보이셨다는 것이고, 숨겨진 이야기속에서는 로마와 같은 힘으로 다른 존재를 위협하는 행위를 하는 자들과는 다른, 세상 버림받은 것 같은 존재에게도 미치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존재로 스스로를 “양들이 드나드는 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36. 스스로 양들이 드나드는 문을 자처함으로, 우리들은 양에서 목자의 역할을 함께 수행할 수 있는 존재로 부르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37. 돌봄을 당하는 양의 존재에서 목자로 누군가를 이끌 수 있는 존재, 곧 예수님의 문으로 안내할 목자의 삶을 사는 것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또 다른 특별한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38. 양은 원래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시력을 가졌다고 합니다. 목자의 도움 없이는 마땅히 갈 길을 갈 수 없는 존재이고, 자칫 한눈을 팔면 길을 잃기 쉬운 것이 양의 속성이라고 합니다.

39. 아마 예수님은 목자로 고백한 이유는 우리들도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삶을 사는 우리들에게 복음의 은혜 선물을 통해 환하게 밝히 드러난 길을 가게 되었다는 것을 고백함으로 예수님을 목자로 고백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40. 당시에 목자의 개념은 나라를 이끄는 왕이나 지배세력을 향한 기대가 담긴 명칭이었습니다.

41.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삶속에서 왕이 정치를 잘하고 백성을 위해 헌신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목자”라는 뜻을 사용했습니다.

42. 하지만, 경험되어지는 대부분의 목자들이 목자다운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선한목자를 찾기는 힘들었고, 오히려 강압과 군림 그리고 차별과 폭력에 가까운 나쁜 목자들을 경험했었습니다.

43. 예수그리스도를 목자로 고백한 이유는 예수님은 선한목자이고, 우리들은 그 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존재라는 고백을 위해 알맞은 상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44. 그리고 스스로를 양들이 드나드는 문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우리들이 양과 같은 존재에서 목자로서의 삶을 위해 소명 받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45. 아마,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파격적인 고백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을 예수님이 사역하실 그 일을 위해 부르셨다는 것은 목자는 군림하는 자도 아니고, 힘을 드러냄으로 압제하는 자도 아니며, 사랑과 헌신으로 돌봄과 사랑을 주는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또한, 바로 우리들이 그런 돌봄과 사랑을 나누는 존재가 되어야 함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46. 우리는 “선한 목자” 예수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 고백은 단순히 우리를 돌보는 목자의 개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도둑과 강도들이 세상을 힘으로 또는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를 고집하는 것을 환하게 드러나게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47. 세상의 약자를 혹은 소외된 자들에게 무관심하고, 배려와 돌봄에는 관심이 없는 독선전이 삶을 통해 스스로를 높은 위치에 올려놓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자들,

48. 그리고 상대적으로 다른 이들은 낮은 위치에 놓으려고 하는 교만한 자들이 바로 도둑이요 강도임을 드러나게 하고 부끄럽게 하는 고백이 바로 “선한 목자 예수”라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49. 스스로를 또한 “양들이 드나드는 문”이 된다는 말씀은 우리들도 선한 목자 예수님처럼 같은 선함을 가지고 세상에 드러나는 폭력과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부름 받은 사람들 이라는 것을, 또한 우리의 실천적 삶을 통해 그렇지 못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삶을 사는 존재라는 사실을 가리키는 고백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50. 봄의 꽃이 영글면, 여름의 푸름이 피어오를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반복적인 시간 앞에서 지루하지 않고 날마다 하나님의 이끄심을 기대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내는 이유는 바로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이 날마다 새로운 길로 안내하시고, 우리들 또 한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51. 신앙을 키우시고, 믿음의 가치를 높이 세우시기 바랍니다 내가 바로 예수님이 이끄시는 그 길로 가는 존재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또한 목자로서 누군가에게 이 진리를 전하며 선한목자 되시는 예수님을 지나서 진정한 구원의 길과 일용할 양식을 누리며 성장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함께 노력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52. 오늘 분문과 평행본문인 사도행전 2:42-47은 초대교회에서 성도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53. 사도의 가르침에 몰두하고, 서로 사귀는 일과 빵을 떼고 기도하는데 힘을 썼다고 합니다. 믿는자들이 함께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소유로 하고, 재산을 다 팔아서 함께 나누며 살았다고 합니다. 성전에 열심히 모였고, 함께 음식을 나누며, 주님께 찬양하며 날마다 늘어나는 성도들을 보며 감사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54. 본문의 내용은 특별해 보이지만, 사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대부분의 교회는 이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55.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우리들은 양처럼 그 길을 순종하며 따르면 분명 사도행전 말씀처럼 모든 교인들은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56. 재산을 팔아 나누었다는 것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지만, 그 만큼 공동체의 가치가 그 정도로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57.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양과 목자와 같은 삶을 통해 우리 대장되신 예수님이 마련한 그 길을 따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58. 강도와 도둑이 어떤 자들인지는 우리들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59. 그러니 선한목자 되신 예수님이 마련한 그 길을 통해 온전한 그리스도인, 교회를 세워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60. 그러기 위해 좀더 함께하는 분들과 마음을 나누고 더욱사랑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과 사랑을 나누는 열린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는 양과 같고 목자와 같은 삶을 통해 예수님이 마련한 그길을 가는 자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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