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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9일 부활주일 설교원고


사도행전 10:34~43

우리는 증인입니다.


1.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2. 엔서니 플루니와 게리 하버마스의 부활논쟁은 꽤 유명한 이벤트였습니다. 베리타스 포럼이라는 세계 유명대학을 돌면서 진행하는 이 포럼에서 이 둘은 1985년, 2000년, 2003년 세차례 이 주제를 가지고 논쟁을 벌였습니다.

3. 엔서니 플루니는 분석철학, 증거주의 학파에 속한 종교철학자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증거 없는 것은 믿지 않는 철저한 무신론자였고, 게리 하버마스는 기독교 변증론자이다 보니까, 강력히 부활의 역사성을 주장하던 사람이었습니다.

4. 이 두사람의 논쟁은 당시에 TV에 생중계 되었으니 관심이 높았고 누가 성공적으로 상대방의 논리를 이길 수 있을지 궁금해 했습니다.

5. 결론적으로 하버마스의 논리가 풀루니의 논리를 이긴 것처럼 토론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풀루니가 이 세상과 우주적 질서에 대한 신적 개입을 인정하고 기독교인으로 개종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6.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하버마스의 완전한 승리 혹은 하나님이 역사하신것으로 고백할 수 있지만, 풀르니의 입을 빌어서 이야기해보면, 없는 증거를 하나 하나 발견하면서 자신은 그저 그 증거에 따라 부활을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7. 이런 이야기를 드리면 예수님의 부활이 잘 믿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누군가가 지금 여러분들이나 저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어떻게 믿느냐고 묻는다면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8. 이 말은 우리들이 믿는 다는 것이 대부분 이성적인 부분이 아니라, 감성적, 아니 다르게 이야기하면 고백적인 영역이기때문에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9.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의 감정”을 말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10. 왜 좋은가? 물어보면, 그냥 좋으니까 좋은 건데 그것을 이유를 찾아서 설명하라면 난감하다는 것입니다.

11. 누군가를 사랑하면 왜 사랑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분들이 많이 없습니다.

12. 어떤 분이 어떤 자매를 사랑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코가 오똑하고 눈이 크고, 키도 크고, 겉으로 볼 때 자기와 어울리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늘어놓습니다. 참 매력 없는 사랑의 이유입니다.

13. 보통은 눈으로 보는 것으로 관계가 형성되는 것 같지만, 깊은 관계는 외모와 상관없이 내면의 관계가 사랑을 유지하는데 더 큰 관계라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14.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매년 이 시간을 보내지만, 사실 우리들이 부활을 잘 설명할 여력이 잘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15. 목사님! 무슨 믿음 없는 소리입니까? 라고 물으시는 분들이 있으실텐데, 이것은 믿음 없는 소리가 아니라, 우리에게 던져지는 많은 질문속에 답을 할 수 있는 것들이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16. 이런 의미에서 베드로가 오늘 전한 본문의 내용을 통해 우리들의 응답이 좀더 명확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7. 오늘 읽은 본문은 베드로가 전하는 설교 내용입니다.

18. 길지 않는 본문속에 베드로는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고, 어떤 일을 하셨으며,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이야기를 간략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19. 그리고 이 이야기를 하면서, 바로 우리가 “증인”이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0. 여기서 증인은 “마르투스”라는 헬라어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불확실한 것을 친근히 맞이했다. 혹은 순교자의 기록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21. 그러니 베드로가 말하는 증인은 “확실한 것을 증거하는 자가 아니라, 순교의 피를 흘려가며 불확실한 것을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증거하는 자”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22. 이것은 매우 매력적인 표현인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우리가 증인이다! 라는 것은 지금 예수님의 행하신 모든 것을 보고 듣고 기억한다는 의미에서 자신 뿐만 아니라, 이 설교를 듣는 자들도 이런 증인이 되어서 이 땅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23. 그러니까, 지금 오늘 본문을 읽고 이 자리에 앉아있는 저나 여러분이나 모두 “증인”이라는 뜻입니다.


24. 본문을 깊이 읽기전에 우선, 베드로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25. 저는 개인적으로 베드로만큼 성장한 제자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26. 베드로는 예수님이 부르신 이후부터 오늘 본문에 이르기까지 계속 성장했습니다.

27. 대부분 복음서에서 읽혀지는 베드로의 모습은 부족하고, 급하고, 제자로서 부적절한 모습으로 읽혀집니다. 특히 누가복음에서는 이방인들보다도 믿음이 부족한 제자들, 그리고 베드로의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28. 마태복음에서는 잠깐,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는 고백으로 바요나 시몬아 내 이름 위에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고 천국열쇠를 주겠다는 인정을 받지만, 곧바로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베드로는 처음부터 훌륭한 제자의 모습으로 읽혀지지 않습니다.

29. 그런 베드로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에, 그리고 성령을 받은 이후에 달라집니다.

30. 사도행전 2장에 성령 받은 후 이어진 베드로의 설교는,3천명의 회개하게 하였고, 예수를 믿게 하였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베드로의 사역의 열매는 예루살렘 교회를 든든히 세워갔습니다.

31. 그 밖에도 베드로는 욥바에서 다비다, 곧 도르가를 살린 후에 무두쟁이 시몬의 집에서 환상을 보면서, 예수님의 복음이 유대인을 넘어서 이방인에게까지 이른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32. 오늘 읽은 본문은 이런 연장선상에서 고넬료라는 이달리아의 백부장이 베드로를 자신의 집으로 초청해서 들은 설교의 내용입니다.

33. 제가 말씀드린 베드로의 성장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34. 우리는 모든 것을 처음에 경험한 것으로 단정 짓습니다. 그 이후에 어떻게 바뀌었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35. 이것 만큼 우리를 힘 빠지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흔히들 사람은 잘 안 변한다고 이야기합니다.

36. 변하지 않는 사람에 기대를 하는 것에는 쓸모없는 행위라고 이야기합니다.

37. 그래서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사람을 믿지 말라고 합니다.

38. 목회자들은 교인들을 너무 믿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성도들도 가끔 목회자를 믿지 말라고 합니다.

39. 물론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점에서 나눈 이야기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런 말들이 우리를 무겁게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람이 희망이다”라고 노래한 시인도 있는데 왜 우리들은 사람에 대한 불신을 삶의 기본원칙처럼 이야기할까?

40. 이런 말들이 왜 생겼을까 생각해보면, 변화에 대한 두려움 혹은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이기적인 생각과 더불어, 자기가 원하는 것에 모든 결과를 목적 짓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1.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없는 것이 지금 우리들의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42. 베드로는 변했습니다. 아니, 점점 성장했습니다. 이 성장의 이유는 끊임없는 인내와 기다림 그리고 “증인”이라는 확신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부활 신앙이 생긴 이후에 일어났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성령의 역사 또한 부활의 신앙 이후에 일어났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43. 부활의 신앙의 증거자로, 성령을 체험하고 성장한 베드로의 설교를 살펴보겠습니다.


44. 34절-35절, 34“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가리지 아니하시는 분이시고, 35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가 어느 민족에 속하여 있든지, 다 받아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45. 첫번째 베드로의 설교주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의를 행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든지 다 받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46. 간단한 내용이지만, 당시로서 매우 파격적인 신앙고백입니다. 종교는 구별짓기를 통해 성장해왔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백성과 그렇지 못한 백성을 구별함으로 선택된 백성들이 순결하고, 순수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명분으로 종교적 세력을 키워왔다는 것입니다.

47. 유대인들은 특히, 이런 관점으로 이방인들을 가볍게 여기고, 자신들과 다르다는 차별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지금 예수님의 복음은 어느 누구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의롭게 살아가다면 모두다 받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48. 새번역 성경은 34절을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가리지 않는 분”이라고 번역을 했지만, 원어성경은 “하나님은 편파적이지 않은 분”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모두에게 공정한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49. 두번째 설교주제는 36절에, 하나님이 이세상에 말씀을 보내셨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를 전하셨다고 합니다. 이 구절에서 주어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번역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읽은 성경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을 주제로 예수님을 통하여 평화를 전하고, 바로 예수님이 모든 민족의 주님이다”라고 번역되었지만,

50. 이것을 예수님으로 주어를 바꾸면, “모든 민족의 주님이신 예수님이 전한 평화의 복음은 하나님이 보내셔서 이루신 것이다”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51. 여기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베드로가 깨달은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곧 “예수님의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뭐가 특별할까? 궁금하실텐데,

52. 이것은 베드로가 처음으로 교회에 공표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들이 지금 예배하고, 함께 교제하고, 함께 찬양하고,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모두 “하나님의 계획”이 라는 것을 고백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53. 세번째 설교의 주제는 37절에서 39절에서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간결한 요약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갈릴리를 시작으로 온 유대지방에 전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이 부어주신 성령의 능력으로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 일들은 “선한 일” 그리고 “마귀에게 억눌린 사람들을 고쳐 주시는 일”이라고 합니다.

54. 간단하게 요약하면 예수님도 성령의 능력을 통해 “선한 일”과 “마귀에게 억눌린 사람을 고치는 일” 이 두가 사역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55. 선한일은 “말그대로 선한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선한일!을 예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56. 마귀에게 억눌린 사람을 고치셨다는 것은 마귀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마귀로 번역된 “디아블로”라는 헬라어는 마귀, 사탄이라고 번역되지만, “거짓 고발자” “비방하는 사람”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57. 이 말은 당시에 종교적 억압을 일삼는 자들,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자신이 하는 행위가 모두 옳다고 여기고 상대를 깎아내리거나 지적질하는 자들 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모든 행위로 다른 이를 억압하는 모든 자들을 포함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58. 이것은 예수님의 사역이 결코 종교적 범위안에만 있던 것이 아니라, 불합리한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저항, 그리고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대한 실천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59. 베드로는 이어지는 본문, 39절에서 이 모든 일을 증거할 수 있는 “증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60. 그리고 41절에서도 “증인”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 두 증인의 표현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61. 39절의 증인은 지금까지 설교한 예수님의 복음에 대한 “증인”이라는 표현이고, 41절에서의 증인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 사건 그리고 부활에 대한 선택된 증인이라는 표현입니다.

62. “우리가 바로 그 증인”이다라는 표현으로 한글성경은 번역했지만, 원어성경에 이 두 증인에 대한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63. 39절에 “증인”은 예수님의 사역을 목격한 불특정 다수를 포함한 증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들은 소문, 직접 본 사람, 사역의 대상이 되었던 존재들을 포함하는 것인 것에 반해, 41절에 “증인”은 선택되어진 증인, 즉 소문으로 확인할 수 없고, 직접 볼 수 있고 경험했던 자들을 통해서 증거되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64. 앞서서, “증인”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말씀드린 것처럼, 39절은 보편적 증인으로 누구나가 증인이 될 수 있지만,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사건 그리고 부활하심은 “특별하게 선택된, 즉 순교의 피를 흘려가며 불확실한 것을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증거하는 자”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65. 부활 주일을 맞은 오늘, 우리들은 바로 이 증인에 대해서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66. 세상은 논리적으로 혹은 드러난 사실을 바탕으로 사실을 써가야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가르치지만,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은혜입은 자들은 “불확실한 것을 명확하게 드러내는”자로서 “희생을 통한 증인”으로 이 땅을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67. 이런 자들이 증인으로 전하는 증거는 4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68. 42“이 예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자기를 살아 있는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의 심판자로 정하신 것을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하셨습니다.”

69. 간단히 말하면 예수님이 “살아있는 자와 죽음자를 판단하는 일을” 맡으셨다는 것입니다.

70. 정리해보면, 살아있는 자는 “의를 행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살아있는 자”이고 “선한일을 행하고, 억압받고 상처받은 자들을 위로하고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면 살아있는 자”이고,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부름 받았다는 확신을 통해 스스로를 희생하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가 바로 살아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 의를 행하지 않는 자, 선한일에는 관심이 없고, 상처를 주고 지적하는 것에 익숙한 자들, 희생에는 관심 없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을 믿지 않는 자는 죽어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71. 베드로의 설교는 부활을 경험하고 고백하는 증인이 어떤 고백과 삶으로 살아가야 하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72. 또한, 우리들이 부활의 증거를 고백하고 설명할때, “증인”으로서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은 합리적 증거를 이야기하는 증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마련한 신비적 사건과 계획의 주인공인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자로서 고백과 감동으로 부활을 증거할 수 이었야 한다는 것입니다.

73. 2023년 부활절, 늘 매년 이 맘 때 경험하는 사건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의 삶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증인으로서 결심하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74. 부활을 복잡하고 이야기하기 힘들어하는 이유는 정말 부활이 있었는가?에 질문이 머물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경험한 증인들이 어떻게 사역했고, 헌신했고, 희생했고, 복음을 증거했는지를 살펴보면, 우리들은 분명히 “증인”으로서 이 땅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75. 교회가 신뢰받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라는 것인 이제는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현실은 우리를 더욱 단단히 만들어내는 연단이라고 저는 고백하고 싶습니다.

76. 더욱 열심을 드러내는 믿음의 삶을 세워 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부활을 증거하는 증거자입니다. “증인”으로 이 땅을 살아가시고, “증인”으로서 서로 관계하시고, “증인”으로서 서로를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77. 그러면, 부활의 신앙의 우리를 성장시키고, 변화시키고,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이땅을 살아갈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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