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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6일 금요일, 예레미야애가 5:1~14



오늘 본문은 전쟁의 참상을 적나라 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남은자들의 모습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현장을 예레미야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쟁에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이들과 여인들인 것처럼 남아있는 자들을 바로 고아와 과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쟁은 모두를 비참하게, 고통스럽게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몰고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호소”하기를 기대하는 예레미야의 노래는 마치 그나마 붙들어야 할 희망의 동화줄 같은 심정으로 노래합니다.


남자들이 군대를 다녀오면, 자신들의 고생한 이야기를 부풀려 이야기합니다. 그만큼 고생스러웠다는 것이겠죠. 누가 제일 고생했는가? 라고 냉정하게 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다들 고생했습니다. 고생과 고난은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상대적으로 “그게 뭐가 힘들었다고”이야기할 수 없는 각자가 경험한 최고의 고난이 존재합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지는 순간, 바벨론의 폭력이 존재하는 순간에 유다와 예루살렘은 최고의 고난을 이야기하지만, 그전에도 이보다 더한 고난이 아니 그만한 고난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반대로 전쟁으로 고난을 가했던 경험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나간 시간보다, 현실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런 현상에 예레미야의 노래는 우리를 좀더 엄숙한 고난의 이해로 초대합니다. 여전히 우크라이나는 전쟁으로 힘겹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고, 잠시나마 전쟁의 참상을 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연회 둘째날이 곧 시작됩니다. 연회를 참석할때마다 느끼는 것은 한해동안 돌아가신 목사님들을 추도하는 예배가 늘 감동적입니다. 유족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우리들은 찬송을 부르고 한사람 한사람 이름을 부르며 그분들을 기억해냅니다. 올해는 고 한상은 목사님의 이름을 부르고 추모하는 시간이 있었으니 더 깊게 마음에 새겨진 예배였던것 같습니다. 은퇴하는 분, 여러가지 질병으로 목회를 쉬게 되는 분, 새롭게 목회를 시작하는 분들의 이름을 부르는 시간도 있습니다. 시간은 가고 결국 저의 이름도 어느 자리에서 불려질 것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매년 모이는 연회는 우리들의 시간의 흐름을 적나라 하게 하는 표현을 경험하게 합니다. 예레미야는 고난에 직면해 있지만, 그 고난은 지나가고 이 기억을 사람들에게 남기려고 노력하며 탄식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자는 간절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하는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은 전쟁으로 인한 고난의 시간은 아니지만, 영원할것 같은 삶은 매년 조금씩 바뀌어 가고, 언젠간 그 자리에 우리의 이름이 올려질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겸손해야하고, 하나님 앞에 서있는 자로 살아가야합니다.


중보기도

내일 토요일 새벽예배는 없습니다. 각자 집에서 기도해주세요.

토요일 저녁에는 권조셉 목사님 안수식이 있습니다. 혹시 오시고자 하는 분들은 서로 수소문해서 카풀을 권장합니다. 오고자 하는 분들이 못오지 않도록 마음을 써주세요. 그리고 많이 복잡할거에요. 근처의 주차장은 유료입니다.

주일예배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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