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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2일 주일 설교 원고




에베소서 6:10-20

악마의 계교에서 벗어나기


에베소교회: 바울의 고민, 하나됨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에베소교회의 도전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현실을 극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 그리스도인의 연합을 넘어서, 아시안과 유럽인, 자유인과 노예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 안에서 거룩한 연합을 바울을 이끌어야 해 했고, 그 실천의 장소가 된 곳이 예베소교회였기 때문에 에베소서는 그리스도인의 연합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본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거대한 담론 속에 바울은 우선, 개인, 가족, 교회 인종의 연합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우리들의 믿음은 각자에게 주어지지만, 결코 혼자 신앙생활 할 수 없고 이웃과 더불어 성도와 더불어 믿음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기때문에, 그리스도의 연합은 바울로서는 매우 중요한 주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당시에도 교회 안에 그리스도인들, 성도들의 연합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다양한 인종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섞여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저마다 다른 모양, 다른 이해, 다른 추종을 통해 온전한 복음 안에서 함께하지 못하고 있음을 바울은 지적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에베소서 말씀에서 강조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지난번에 이것에 대한 말씀을 드렸는데, 우리들이 하는 모든 행위는 그리스도 안에서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결단, 혹은 결심으로 특별한 것을 이루어낼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리스도 안에서”하지 않는 행위는 결코 영원할 수 없습니다.


현실: 하나됨은 쉽지 않고, 교회는 기대와 다르다.

우리들이 흔히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용서 해야하며, 함께 더불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삶에서 이게 쉽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내 마음으로 노력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처음에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마음 먹은 대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아마 이 세상에 갈등과 차별 혹은 전쟁과 싸움이 일어나질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라는 의미는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 연합”을 꿈꾸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기초적인 작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각자 개인적으로 여쭤본 적은 없는데, 여러분의 믿음의 기초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아니, 다른 말로 하면 교회를 어떻게 다니게 되었습니까? 한국사람들에게 교회는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이는 공간이었습니다. 우리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기회, 그리고 복음은 우리 안에 갖혀 있던 것들을 새로운 희망의 공간으로 이끌어가는데, 복음은 우리에게 큰 역활을 했습니다. 한국을 일으켜세우는데 신앙은 그리고 교회는 큰 역활을 했고, 그런 가운데 교회는 성장했습니다. 겉으로는 좋은 모양, 달라진 위상들이 따라갔지만, 커지는 모양에 비해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우리들은 지금 확인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해서, 오늘날 교회는 폐쇄적인 공동체로 오해를 받습니다. 연합감리교회의 슬러건은 오픈 마인드, 오픈 허트, 오픈 도어입니다. 세상을 향해 적극적으로 발돋움하는게 우리 교단이 지향하는 선교적 전략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슬로건을 걸어도, 교회가 폐쇄적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세상과 접촉점을 찾기 힘들고, 자기들끼리 잘 사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저희교회 이름이 열린교회라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해 활짝 열린 공동체를 선언한다는 것은 바울이 고백하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기다리는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발걸음 하는 공동체임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

개인적으로 고민하는 것은 우리교회가 어떻게 이 지역사회에 접촉점을 만들어서 어떤 사역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민사회에 늘 우리들은 우리들만의 공간을 만들어 놓고 우리끼리 평안한 안식처가 될만한 공동체를 세워가는데 지금까지 노력해왔다면, 이제는 우리들이 이 지역사회에 어떤 모양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의 향기를 낼 수 있는지를 고민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가지 아이디어가 있지만, 요즘 오클랜드에 자기 동네를 청소하는 NGO단체가 연락이 왔습니다. 저희교회가 어느정도 스트릿을 맡아서 정기적으로 청소를 하는 아이디어를 들고 연락이 왔는데, 청소도구와 여러가지 장비는 그 단체에서 제공을 하고, 우리들은 맨 파워를 제공하는 형식입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시간을 두고 고민한 후에 이름으로 만이 아니라, 실제로 열린공동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역을 우리들의 손으로 이루어가는 소망을 품어 봅니다. 이런 노력은 우리들이 느끼는 경계를 넘어서서 세상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우리 스스로의 존재를 오직 주님 안에서 있지 않으며 인정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그래야, 교회는 그리스도안에서 연합한 자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곳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그리스도안에서 연합”을 우리들의 사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바울이 그토록 “그리스도 안에서”이루려고 한 “그리스도안에서 연합”은 교회를 폐쇄적으로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활짝 열어서 모든 이들이 하나가 되는 것을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인종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고, 사건을 이해하는 사고도 다릅니다. 똑같은 사람만 나와 비슷하다고 해서 잘 만나지는 것도 아닙니다. 맘에 드는 사람만 내 친구 한다는 것은 어릴 적 철없는 생각입니다. 우리들은 나와 다른 자들을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을 위해 노력하는 자들이고, 이것을 교회라고 고백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 해야합니다.


바울의 권면

오늘 본문은 바울의 결론 부분입니다. 6절에 끝으로 말한다는 바울의 서술처럼, 바울은 마지막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인종, 편견, 차별을 그리스도안에 연합”하기 위한 특별한 기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선,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는 특별한 갑옷을 입으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선한 의도,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 우리를 열심으로 이끄는 것, 우리가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것 그것을 방해하는 것은 악마의 간계입니다. 혹시 그런 경험 없으십니까? 뭔가를 결심하고 막 시작하려고 하는데, 김새게 무언가 방해의 요소들이 떠오릅니다. 바울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서술합니다. 이런 상황에 바울은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온몸을 덮을 갑옷을 준비하라고 합니다. 이 악마의 간계는 12절에 보면,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어두운세계의 지배자와 악한영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선언하는 맞설, 악마의 계교는 사람을 적대자로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가 교회 안에 갈등이 서로 일어나는 일은 바울의 말을 빌어쓰면, 악마의 계교에 의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우리들이 모든 조건과 상황을 넘어서 하나가 되는 과정은 다양한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사람을 적대자로… 함께 신앙생활하는 자들을 갈등의 요인으로 여깁니다. 이것을 바울은 악마의 간계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 사람을 대적하지 말고 어두운 세계를 지배하는 지배자들과 악한 영들을 대적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겨내기 위해 바울은 하나님이 주시는 온몸을 덮는 갑옷을 입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허리띠를 메고, 정의 가슴막이로 버티고,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전할 준비를 하고, 믿음의 방패를 들고 구원의 투구와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으로 무장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비유적으로 설명하지만, 악마의 간계를 이겨내기 위해, 적어도 사람을 적대자로 세우지 않고, 악한 영들을 대적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입니다. 진리의 허리띠를 메라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중심에 세우라는 것입니다. 허리가 무너지면 움직이질 못합니다.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 않으면 우리의 발걸음은 무의미합니다. 이 진리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과 함께,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내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무게를 두고 생각해야합니다. 이것이 허리를 든든히 받히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의의 가슴막이는 우리의 심장을 보호합니다. 심장이 온몸에 피를 뿜어내 듯, 하나님의 정의의 가슴막이로 보호되는 우리의 심장은 하나님의 정의를 온몸으로 뿜어내야 할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정의의 힘으로 이 땅을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정의 구약에서 부터 끊임없이 선포되어진 내용입니다. 가난한자, 억압받는자, 고난받는자, 나그네와 어린고아와 과부들을 돌보는 일들을 실천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밟는 땅 마다 복음을 전한다는 의미는 평화의 복음을 우리의 발걸음을 전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어딜 가고 누구를 만나든, 사람들이 평화를 경험하고 화평이 이루어진다는 평가를 받도록 노력하십시요. 갈등이 있는 자리에 우리들이 함께하면, 그곳이 바로 평화의 자리로 바뀌도록 노력하고, 늘 기쁜 소식을 전하는데 노력하라는 것을 명심하라는 의미입니다.

믿음의 방패는 어떤 모함과 아픈 말과 상처 내는 불손한 말들을 막아냅니다. 믿음으로 이런 것들을 막아내는 것이지 믿음이 부족하면 엉뚱한 것에 시험 듭니다. 교회 안에서 가장 다루기 까다로운 것 중에 하나가 말로 건넨 상처와 말로 상처를 내는 경우입니다. 믿음이 든든할 때는 간단하게 넘길 수 있는 것이지만, 악마의 계교로 우리들은 쉽게 말한 마디에 그것이 실수인 줄 알면서도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고, 충분히 상대를 미워할 마음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방패가 된다는 것은 우리들이 지금 교회공동체안에 함께할 때 늘 믿음의 방패를 치켜들고 대화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단단히 가져야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가 왜이래요?”라고 하는데, 믿음의 방패를 앞세우면, 그런 것 쯤이야 하고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실수는 잠깐인데 상처는 오래갈 수 있습니다. 믿음이 단단히 버쳐내지 못하면 그럴 수 있습니다.

구원의 투구는 우리의 머리를 보호함으로 구원의 확신을 늘 기억하며 살아가도록 합니다. 은혜의 기억, 사랑의 기억,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고백하고 주님 처음 만나날의 기억 이런 기억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우리들은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투구로 머리에 늘 쓰고 있어서 잊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싸우는 유일한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검이라는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혹 우리들이 늘 평화롭기만 하면 좋은데, 갈등의 손아귀에 몰아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들이 단단히 붙들어야 하는 것 지식도 아니고, 지혜도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검을 붙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무기를 들기 위해서는 이런 갑옷을 입기 위해서는 바울은 18절-19절 말씀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18절: “온갖 기도와 간구로 언제나 성령 안에서 기도하십시오. 이것을 위하여 늘 깨어서 끝까지 참으면서 모든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십시오.”

19절..“또 나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내가 입을 열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셔서 담대하게 복음의 비밀을 알릴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십시오.”


모든 성도를 위해서는 간절히 간구하고, 나를 위해서는 복음의 비밀을 알릴 수 있도록 기도하라…

에베소서 말씀은 초신자가 아니라, 신앙적 성숙을 기대하는 공동체를 향해 전한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고민하는 일과 당시 에베소교회의 고민이 일치합니다. 바울은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자들, 모든 것이 달라도 주님안에서만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바울이 기대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갑옷을 입고, 사람을 적대자로 여기지 말고, 악마의 계교를 주의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위해서 간구하되, 자신을 위해서는 온전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삶에 비슷한 고민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 비슷한 고민 속에 우리들이 기억해야할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우리들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소망입니다. 이를 기억하시고, 우리가 고백하는 교회의 이름처럼 어느 누구나와 함께 하나됨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주님이 말씀이 하신, 세상이 맛볼 수 없는 복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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