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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열린교회BKUMC

9월12일 주일 설교 원고





마가복음 8:27-38

우리의 힘, 소망하는 능력

예수님은 누구신가?

오늘 읽은 본문은 베드로와 예수님의 대립적인 대화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베드로를 그려내는 성경의 내용을 보면, 수제자 같은 면모를 발견하기에 힘든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선, 오늘 읽은 본문 이전에 예수님은 많은 기적들을 일으키십니다. 병을 고치기도 하고,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고, 오병이어 기적으로 사람들을 오천명을 먹이시는 기적까지 일으키셨으니, 갈릴리 지역의 분위기는 거의 예수님의 소문으로 사람들이 흥분해 있던 상태였을지 모릅니다. 이럴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질문으로 “예수님은 누구신가?”에 대한 물음이 오늘 본문의 주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오늘 읽은 본문이 마가복음의 중심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라고, 엘리야라고, 혹은 예언자 중 한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다시 묻습니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제자들의 답이 궁금했는지 아니면, 의도치 않은 답이 나오질 않아서 인지 모르겠지만, 예수님의 질문의 범위가 좁혀 들어왔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디가서 말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것으로 예수님도 암묵적으로 “긍정하는”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메시야라는 뜻입니다. 당시에 메시야는 로마의 황제나 애굽의 왕을 부를 때 사용하였고, 유대인들에게는 메시야의 의미는 구원자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세상의 어떤 왕보다도 강력한 힘을 가진 분으로 예수를 고백한다는 뜻이라고 할 수입니다.


베드로의 폭주: 하나님의 일 과 사람의 일

분위기도 무르익었고, 누가봐도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을 늘어났으니, 베드로의 눈에는 곧 예수님은 세상을 바꿔 놓으실 분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제자”라니 벅찬 마음으로 베드로는 이 고백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본문에 예수님이 자신이 앞으로 받을 고난에 대해서 이야기하십니다. 사람들의 기대의 정점에 계시는 순간에 예수님이 자신이 장차 받을 고난을 이야기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싹 잡아당기고는 “항의”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항의라는 말은 헬라어로, “에피티마호”라는 말로, “책망, 경책, 경고,”이런 뜻으로 쓰인 단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앞으로 고난 받으실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베드로가 예수님의 멱살을 거의 잡고는 항의 즉 책망했다는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이런 전개에 당혹스럽습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받는다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이 말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싹 당겨 놓고는 책망했다는 것도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대게 이런 반응은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를 때 일어나는 반응이고, 자기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도 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이 기대하고 꿈꿨던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가 기대하고 꿈꿨던 것과 다른 것을 말씀하시니, 베드로의 속내가 예수님을 바싹 당기고 항의하는 모습으로 드러난 것 같습니다. 이런 베드로를 보시고 예수님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라고 말씀하시고는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베드로가 집중한 것은 “사람의 일”에만 집중하였던 것이지, “하나님의 일”에는 관심이 없는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아마 베드로의 행위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또는 복음을 오해하고, 자기의 욕망이 투영된 일을 마치 하나님의 일이라고 착각했던 사람들을 향해 잘못된 것임을 가리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일이든 목적과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의미도, 우리들에게는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목적과 이유를 잘못 알고 있으면 예수를 믿어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와 같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들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오해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해하고 있는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희생”을 통해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이야기하십니다.

하나님 바로 알기: 책망으로 돌아서는 것

평행본문 중에 잠언 1장에 “지혜”가 등장합니다. 잠언서에서 지혜를 사람처럼 부르고는 예언하는 자로 1장에서 등장시킵니다. 광장에서 지혜가 외치기를 “하나님을 바로 알기 위해, 하나님이 주시는 책망을 듣고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이 지혜를 이해한다면, 예수님이 베드로를 “사탄아 물러가라고 외친 의미”는 책망을 듣고 돌아서라는 예수님의 준엄한 부르심 일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혜는 또한, 하나님의 책망을 듣지 않는 자는 자기가 한일의 열매를 먹고, 자기 꾀에 배가 부를 것이며, 하나님을 등돌리고 살다가 자기를 죽이고, 안일하게 살다가 자기를 멸망시킨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지혜는 이런 하나님의 책망을 듣지 않는 자들을 어수룩한 사람, 미련한자라고 표현합니다. 베드로를 상징으로 하는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에만 집중하는 자들이 바로 이 어수룩한 사람, 미련한자를 대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방향으로 말하는 것

또다른 평행본문인 야고보서 3장에 보면, 야고보의 말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 등장합니다. 야고보는 우선 누구든지 “말”에 실수 할 수 있음을 인정하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런데, 사람의 “말”을 다스리는 것을 “말”을 부리려면 재갈을 물려야 원하는 대로 끌고 다닐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우리들이 하는 “말”을 조심해야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이 이야기는 한 구멍에서 단물과 쓴 물이 함께 나올 수 없는 것처럼, 우리들의 입에서도 늘 “한방향의 말”이 나와야 한다는 말로 마무리합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의 입술에서는 늘 행복한 이야기만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고 불평이나, 탄식을 내지 말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우리들의 입술에서 늘 변함없이 터져 나와야 하는 것은 무슨 일이든 한 방향으로 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일 신뢰받지 못하는 사람은 한입으로 두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거짓말이 문제가 아니라, 어느 방향을 이야기할지 몰라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방향으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 책망으로 돌아서고 한방향을 잃지 않는것

잠언은 지혜를 통해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을 위해 노력하라고 당부하고 있고, 야고보서는 우리들이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은, 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당부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에 대해서 잠언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책망을 듣고 돌아서면 보여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말에 재갈을 물려서 부려야 바른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우리들의 입술을 사용할 것을 당부합니다. 마가복음에서 들려주는 예수님의 이야기는 베드로의 폭주를 느끼게 해주지만, 베드로를 통해 우리들도 베드로와 비슷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살펴보게 합니다. 하나님에 일에는 관심 없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펼쳐 놓고는 이것을 교회 일이라고 떠드는 것은 결국 “책망을 받아 돌아서야 할 일”이고, 우리들의 입에 재갈이 물려지지 않아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이런 행위들을 통해 오늘 읽은 본문은 정확한 한 방향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 그리고 우리들의 입술이 향해야 할 바른 방향은 “사람의 일을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그리고 “예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하는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자기를 부인한다는 의미는 “아페르 네오마이”라는 말로 “기권”하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시말해,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내가 소유한 권리를 포기한다는 의미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도 “자기를 부정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내 권리도 포기하고, 자기를 부정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가지 더,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은 것이요.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복음이 그 생명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기억해야합니다. 우리들이 담고 있고, 소망하는 에너지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더 높은 곳으로 가야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인생은 늘 성공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경쟁에서는 늘 이겨야 하고, 인정받는 자리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욕망들이 동행하는 것을 멈춰서서 진정한 삶의 방향, 그리고 우리들이 누려야할 에너지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십니다.

많은 기적을 일으키신 후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대와 욕망을 들고 예수님을 따랐을 것입니다. 제자로 부름 받은 자들도 다를 바 없이 예수님과 함께 하면 든든하게 세상을 뒤집어 놓을 힘의 정점에 놓이게 될 기대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기대속에 “고난”을 통해 새롭게 봐야할 “복음의 능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능력과 달리 복음의 능력은 부족해야 드러납니다.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자는 오히려 복음의 능력이 맛볼 수 없고, 자신을 희생하려는 자에게 복음의 능력을 맛볼 수 있게 합니다. 말에 재갈을 물리듯, 조심스럽게 말하고 관계하는 자를 통해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이 책망하시는 것을 듣고 돌이켜야 비로소 참 그리스도인으로 이 땅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앞으로 고난 받으신다는 이야기에 예수님께 무례하게 한 행동은 대부분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비슷한 마음이 표현되어진 것입니다. 처음에 예수님을 오해했던 자들은 복음을 오했습니다. 복음을 오해하니까, 우리가 기대하는 힘, 소망하고 있는 능력이 세상 추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이들을 향해 예수님은 우리들이 기대하고 바라보는 것들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 알려줍니다.


어제 어떤 분이 학교에서 만난 학생 사역을 하는 목사님에 대해서 나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40년가까이 학생사역을 하는 분이었는데, 지금은 60이 훨씬 넘으신 분입니다. 이분의 사역스타일은 그냥 학생들을 자유롭게 방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소그룹 리더 교육을 간단하게 하거나, 일주일에 한번 성경공부가 끝이고 나머지 학생선교단체를 위한 사역은 학생들이 고생고생해서 준비하고 진행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늘 아쉬운 것이 목사님이 좀 적극적으로 이끌어주시고, 자신들이 덜 힘들게 해주기를 바라는데, 그 목사님은, 스스로 최선을 다한 경험이 공동체를 단단히 한다는 철학으로 늘 방치하셨다고 합니다. 이 학생도 처음에는 그냥 투덜 투덜 대다가 결국에는 자신이 여러가지 일들을 해내면서 은혜도 경험하고, 보람도 느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들의 생각에는 늘, 뛰어나고, 능력있고, 리더쉽 있고, 모든 것이 다 갖춰진 리더를 기대하고 소망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별히 교회는 이런 모든 것이 갖춰진 분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베드로가 예수님이 기적을 베푸시는 순간에 예수님이 좀더 카리스마를 가지고 군중을 이끌어 가면 나라도 세울만한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 운동을 이렇게 오해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결국 사람들의 기대와 다른 삶의 방향, 힘,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람들의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기대, 삶의 방향, 힘, 능력..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에게 일치하는 공통점이 있다면, 우리들의 소망, 그리고 능력은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 운동은 세상 다 생각하는 방향과는 달리 엉성하고 부족해보이지만, 이것을 고난이나 상처로 표현할수도 있는데, 이런 부족함을 든든히 채우시는 은혜를 소망하며 이 땅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완벽한 것보다, 부족함을 늘 다른 사람의 노력과 헌신으로 채워짐으로 공동체는 더 풍성해지고, 우리가 생각지 못한 은혜를 경험합니다. 펜데믹 시간을 보내면서, 세상 똑똑한 것보다 중요한 것이 서로가 서로를 채워주고 배려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습니다. 이 마음을 품으시고 더욱 하나님과 든든히 동행하며 주시는 은혜를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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