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이스라엘 성지순례 일곱째날

베들레헴에서 머물면서 사마리아 지역으로 순례를 떠났습니다. 오기전에 테러가 있어서 갈 수 있을지 없을지 불확실했었는데

​다행히 갈수 있게되어 실로와 사마리아지역을 순례할 수 있었습니다.

KakaoTalk_Photo_2023-03-14-12-33-26 001.jpeg

실로입구

Ep8. 사마리아 지역순례

실로 Shilo 

KakaoTalk_Photo_2023-03-06-18-21-26 002.jpeg

실로는 벧엘의 북쪽, 곧 벧엘에서 세겜으로 이르는 큰 길의 동쪽에 있던 에브라임의 성읍이다. 해발은 낮고, 남서쪽을 제외하고는 모두 구렁으로 둘러 있으며, 목초와 물을 가까이에서 확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형상 적으로부터 쉽게 방어할 수 있는 곳은 못되었다. 하지만 가나안 당의 중심에 위치 하고 있어 전국 어디에서나 사람들이 모여들기가 편 한 이점 때문에 가나안 정복 초기에는 적절한 요충지가 되었다. 그러다가 후대에 와서는 대로와 광대한 농사 지역의 미비로 가나안의 중심지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다. 실로의 거주민들은 실로 사람(Shi-lonite)으로 불리웠고, 실로 북쪽 에는 다아낫 실로(Taanath-Shiloh)라는 촌락이 있었다. 여호수아가 실로(Shiloh)에 회막을 세움으로써 이때부터 실로는 사무엘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중심지가 되 었다(삿18:31, 왕상1:9, 24). 그래서 길갈에서의 첫 번째 땅 분배이후 두 번째 나머지 일곱지파의 땅 분배시 이스라 엘 지도자들이 실로(Shiloh)에서 이를 의논하고 제비를 뽑게 되었던 것이다(수18:8~10, 19:51). 또한 실로에 제단 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제단을 쌓았던 르우벤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의 진상을 알아보기 위해 여러 지파가 모 인 곳도 바로 이 곳이다(수22:12). 더욱이 실로는 사사 시대에 매년 여호와의 절기가 이뤄지던 성지였으며(삿21:19),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이스라엘이 패하여 법궤를 빼앗기기 전까지 중앙 성소로서 역할을 감당하여 왔었다(삼상4:3, 4). 그리고 B.C. 1050년 경 블레셋 에 의해 파괴된 후 성소로서의 기능은 거의 상실한 채 예레미야 시대까지 존재해 있었다(렘41:5).. 실로는 가나안의 최고 중심지로서 지리상의 위치로 볼 때 신12장에 규정된 "중앙 성소의 규례"에 가장 적합한 곳이 었다. 그러나 사사 시대 때에 불신앙과 퇴폐 풍조가 만연함에 따라 그 의의를 상실하였다. 그리고 후대에 예루살렘 성 소가 세워짐으로써 이스라엘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가 실로에서 궁극적으로 예루살렘으로 바뀌게 되었다. 

실로입니다. 성소가 있었던, 우리들이 잘아는 사무엘의 이야기가 시작된 곳입니다. 법궤를 빼앗긴후 무너진 곳입니다. 

그리심산 

KakaoTalk_Photo_2023-03-06-18-21-48 006.jpeg

세겜, 곧 수가성은 갈수가 없어서 그리심산에서 조망했습니다. 앞에 보이는 산이 에발산이과 우리가 서있던 산이 그리심 산입니다. 사마리아의 성전과 아합의 궁터가 있는 자리입니다. 이곳에서 조망할 수 있었던 것은 세겜의 옛 성터와 야곱의 우물, 곧 수가성 여인이 예수님을 만났던 자리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사마리아 지역은 가는 도중에 삼엄한 경계를 하는 군인들을 볼 수 가 있었죠. 두번째 장소는 그리심산입니다. 사마라이인의 성전이 있었고, 맞은편은 에발산 그 계곡 사이로 세겜이라는 도시가 들어왔습니다. 멀리서 조망하며 본 세겜의 흔적 그리고 언약비, 여호수아와 모든 지파들이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언약을 세운곳, 그리고 그 옆에 요셉의 무덤이 있고, 수가성여인을 기념한 교회를 볼 수 있었습니다.  

사마리아인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한후에 앗수르는 식민지 정책으로 혼혈정책을 사용하죠. 사마리아인은 피가섞인 유대인입니다. 이를 구별하기 위해 역대기서에서 족보를 나열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사마리아, 아합의 옛 궁터

KakaoTalk_Photo_2023-03-14-12-35-09 001.jpeg

사마리아의 아합왕의 궁터는 엄청난 고고학적인 가치가 있음에도 거의 방치되어 있는 수준입니다. 안타까웠습니다.

엄청난 점심을 먹었죠. 아마 사마리아와 우리들의 음식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아합의 궁전터를 보는 것은 엄청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북이스라엘에 아합이 지어놓은 궁전터를 확인한것은 성서고고학역사상 큰 업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