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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묵상, 12월14일 월요일



몸을 내어주심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건져내시고, 깨끗하게 하셔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디도서 2:14)



타조는 날지 못하는 새입니다. 새 라기 하기에는 치명적인 약점이죠. 다행이 빠른 발을 가진 새라는 것으로 치명적인 약점이 보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타조의 진정한 치명적 약점은 “기억을 잘 못하는 것”입니다. 어느정도냐 하면, 자신이 낳은 알을 어디에 낳았는지 기억을 잘 못합니다. 이정도면 마땅히 부화나 시킬 수 있을까 싶은데, 이런 정신 없는 상황에서 때가 되면, 타조가 하늘을 쳐다보는 진지한 행위를 한다고 합니다.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 알이 언제 부화하고 얼마나 더 알을 품어야 할지를 계산한다는 것입니다. 타조의 반전 모습에 여러가지 생각을 이끌어갑니다.


구글은 회의할때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직책이나 연봉을 밝히지 않고 회의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직책과 연봉이 필요치 않은 선입관을 주기 때문에 창의적인 회의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최대한 긍정성과 자율성을 확복한 상태에서 진행된 회의는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기대 때문입니다. 반면에 더이상 진보하지 않는 회사는 여전히 직급을 통해 일처리를 하다보니 예전만큼 효율성과 창의성이 떨어지면서 회사규모를 줄여가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고 합니다.


구글의 방식은 방식은 타조가 마치 하늘을 올려다보는 반전과 일치하고, 치명적 약점들은 더이상 진보하지 못한 회사들이 지닌 문제와 일치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 두 관점의 근본적인 차이는 약점을 어떻게 활용하고, 구조를 어떻게 이해했는가에서 오는것이 아닙니다. 타조가 하늘을 올려다 본것은 알을 낳은 어미로서의 책임과 희생에 근거한 행위이고, 구글이 집중한것은 더 큰 책임을 가진 자들이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회사운영을 위해 자신의 위치를 내려놓고 책임을 다하는 모습에서 근거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몸을 내주신것, 이것은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 자기 희생과 책임을 통해 우리를 새롭게 하는 창조적 결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을 내주셔서 결국 우리를 자녀삼는 것이 목적인 그리스도의 계획은 결국, 우리들을 좀 더 새로운 삶의 영역으로 초대합니다.


세상이 빠르게 바뀌니 세상을 무조건 따라갈 수 없습니다. 다만, 책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자리에는 바뀌는 세상과 상관 없이 창의적인 일들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생명을 일으키는 실천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내가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희생하면, 더 큰 생명의 길로 나아갑니다.

묵상

무엇을 희생해 본적이 있습니까? 새로운 생명이 그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목격한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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