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9-81편, 7월5일 화요일



그래서 나는 그들의 고집대로 버려 두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가게 하였다.(시편81:12)

어제 아침 강현옥권사님으로 부터 서광래권사님이 많이 좋아지셨다는 감사의 메지시와 중보기도의 고마움을 나누어왔습니다. 함께 보내신 동영상에서 권사님은 양손을 다쓰시고, 양쪽 발을 다씌며 재활에 집중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중보하며 기도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에, 한없는 감사와 기쁨이 하루종일 온몸을 감싸 안은듯했습니다.


요즘 교회안에 몇몇 질병가운데 있는 분들을 향한 저의 마음은 어떻게 간절히 기도해야할까 부터, 공간과 시간을 정해서 금식기도를 해야할까? 하는 마음이 생길정도로 저에게 간절함이 가득차오른듯 합니다. 가족들은 오죽이나 할까? 하는 마음에 목사는 더 간절히 기도하고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암으로 고통받는 분들이 세분이시고, 이런 저런 원인을 알 수 없는 것으로 아픈분이 한분, 그리고 서광래권사님까지, 우리들이 기도로 함께해야할 분들이 이렇게 많으니, 저에게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오늘 본문은 아삽의 노래입니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스라엘을 향해 아삽의 노래는 “왜 이런 고난이?”라는 질문이 깊게 베어있습니다. 시편은 단호하게 열왕기에서 외쳤던것 처럼,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을 섬겼기때문이라는 것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고난이 다가오면, 우리들은 원인을 찾습니다. 질병도 그렇고, 다른 우리들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고난에 대한 원인을 찾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이나 그때나 비슷합니다. 이스라엘은 단호하게 자신들이 전쟁으로 나라 망하게 된것은 우상을 섬겼기때문이라고 단정하지만, 그 단정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이 보호하실것이라는 소망이 가득담겨있습니다. 즉 고난이 심판처럼 다가오지만, 그 고난을 이겨내게하시는 분도 하나님이 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역설적인 고백들이 성경에 가득합니다.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는 질문은 원망으로 혹은 무관심으로 삶을 끌고 가는 것 같지만, 결국 이렇게 주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그 답을 얻게 합니다.


그러니, 아픔이나, 고난을 심판처럼 생각하지 마시고, 오히려 무관심하고 그냥 뭘하든지 내버려두는 것이 심판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주님과 더 꼼꼼히 동행하는 시간을 상기시켜주는 의미로서 고난을 아픔을 이해하면 좋을 듯합니다.


묵상

요즘 하나님이 여러분을 어떻게 다루시는 것 같습니까?


중보기도

  1. 장명숙 집사님의 방사능 치료와 서광래 권사님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저희 교회예배에 나오시는 임윤근 형제님의 어머니의 암이 치유되도록 기도해주세요.

  2. 교회학교와 중고등부 여름행사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3. 열린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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