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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8일 주일설교 원고, 베드로후서 1:16-21




베드로후서 1:16-21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


1. 우리들 머리속에서는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있습니다. 여기에 제자, 곧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이미지가 있죠. 다들 비슷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머릿속에 있는 것이 실제로 경험되어지면 좋은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그렇습니다.

2. 저도 처음에 목회자는 이런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하나 가득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먼저 했어야 하는 일은 지금까지 알았던 것들을 하나 하나 비워내야만 했던 것 같습니다.

3. 이유는 잘 아시겠지만,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과 현실에 늘 간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4. 뭐 이런 것들이 전부 부정적인 것은 아니고, 하나, 하나 삶을 배워가는 것이라고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5. 초대교회에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6. 처음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 할 때만 해도 성경은 많은 군중들이 모여들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큰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7. 사실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한 것은 예수님이 계실 때가 아니라, 부활 후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 받고 변화된 제자들의 적극적인 사역 때문이었습니다.

8. 교회에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예상 못한 문제들이 하나하나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9. 그 중에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는 늘어나는 숫자에 위기감을 겪은 이들이 벌인 일이고, 우리가 잘 아는 바울서신도 대부분 초대교회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문제들을 치리하기 위해, 곧 복잡한 것들을 정리하기 위해 보낸 편지들입니다.

10.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면 하나님께 영광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교회가 부흥할 때 교회는 늘 예상치 못한 여러움에 빠지기도 하고, 다양한 거짓 교사들이 유입되면서 교회가 늘 내홍을 겪어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기억해야합니다.

11. 그래서, 무조건 크다고 좋은 것도, 큰 교회가 모든 것이 다 잘되어 있는 이상적인 교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들은 기억해야합니다.

12. 오늘 읽은 본문도 베드로가 초대교회에 닥친 어려움에 대해 다루는 이야기입니다.

13. 우선, 초대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부흥을 경험한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다루는 내용들이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역사적인 사실”만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이들, 또는 인간의 역사에 “신적 개입”을 부정하는 자들,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부정하는 “에피큐리아 학파”의 교회 유입에 교회가 여러가지 질문에 맞닿은 것 같습니다.

14. 에피큐리아 학파는 인간의 이성을 중요시하며 합리적인 사건만 사실로 인정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중에 “도마”가 이런 비슷한 성향을 가졌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5.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못자국난 손과 옆구리에 창자국에 손을 넣어야 부활을 고백했던 도마처럼, 에피큐리아 학파 사람들은 역사적인 예수와 고백적인 예수를 구분하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16.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다 보니, 이런 성향을 가진 이들이 함께 모여들었던 것 같습니다.

17. 그리고, 이런 자들이 교회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사람들이 이런 자들의 질문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듯 합니다.

18. 베드로가 이런 자들을 향해 전한 말씀이 오늘 읽은 본문입니다.

19. 16절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의 권능과 재림이 교묘하게 꾸며낸 신화가 아니라, 자신들이 바로 예수님의 능력과 재림을 눈으로 본자들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0. 베드로가 지적한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것들”을 교묘하게 꾸며낸 신화라고 이야기하는 자들이 교회에 문제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바로 “내가 그 사실을 눈으로 본자”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1. 베드로가 눈으로 봤다는 말은 “목격자”라는 뜻입니다. 내가 바로 눈으로 보고 증거한 사람이다.

22. 17절은 베드로가 눈으로 본 것에 대한 증거입니다.

23. “더없이 영광스러운 분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좋아하는 아들이다” 하실 때에, 그는 하나님 아버지께 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았습니다.”

24. 그리고 이것을 베드로는 18절에 거룩한 산에서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 이 말소리가 하늘로 부터 들렸다고 베드로가 고백하고 있습니다.

25. 베드로가 이처럼 예수님이 영광 받을 일을 기대하고 소망한다는 것은 “재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6.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다시오실 분이라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을 증거하기위해 예수님이 산에서 얼굴이 변화된 사건, 정확히 말하면, 환하게 빛나는 빛때문에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사건을 기억하면서, 그때 경험한 것을 통해 예수님의 재림은 분명히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을 주기 위해 오늘 본문이 쓰여졌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27. 이 말은 당시 초대교회안에 사람들 중에 앞서 말씀드린 에피큐리아 학파들이 예수의 재림은 역사적으로 일어 날리 없다는 거짓 가르침에, 베드로가 직접 산에서 보았다고 응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28. 복음서를 보는 두가지 큰 눈이 있습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신앙적인 눈, 이 두가지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신학교에서는 주로 “역사적 예수 연구”에 관심을 갖고 성경을 읽는 훈련을 시킵니다. 이유는 정확하게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 입니다.

29. 저도 개인적으로 이런 성서읽기 훈련을 좋아해서 성서학을 전공하고 성경 주석, 역사적 성경읽기에 관심을 갖고 10여년을 공부한 것 같습니다.

30. 개인적으로 관심이 간 이유는 성경을 읽는 재미를 느낄 수가 있었기 때문이고, 본문의 배경이나 역사적인 다른 자료와 비교해서 읽었을 때 경험되는 새로운 것과 본문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31. 성서연구만 그런 게 아니라 신앙의 여정도 두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초자연적인 기적이나 믿음을 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도 있지만, 반대로 이런 경험이 부끄러워 말을 잘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32. 저에게 큰 은혜가 주어졌던 수련회때, 정말로 나무뿌리를 뽑는 심정으로 기도할 때 그때 경험했던 영적인 체험이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 기도하는 주위에 눈이 소복하게 쌓였는데, 제 주위에는 눈이 쌓이질 않았습니다.

33. 그때는 신비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뜨거운 기도열기에 눈이 녹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34. 청년들 모임에서 설교할 때, 저를 위해서 중보기도하며 멀리서 기도하던 청년의 노랫소리가 설교중에 가깝게 들린적도 있습니다.

35. 설교중에 방해가 되서 아이들한테 물어보니, 저에게만 들린 노랫소리였습니다.

36. 이런 신비적인 경험이 저에게도 있고,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간절함도 있고, 이 간절함을 통해 구원을 성취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 되려는 다짐도 있습니다.

37. 그리고 동시에 이성적이고, 냉정한 판단으로 교회공동체를 세우고 교인들을 훈련시키고자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38. 제가 확신하는 것은 이 두가지가 함께 건강하게 자리해야 교회는 더욱 든든히 세워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39. 베드로는 예수님의 재림이 분명히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통해 우리들에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의심하지 말고 믿음을 든든히 세워갈 것을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40.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베드로가 이런 의심을 하는 자들을 공격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우리들이 흔히 착각하는 것이 교회가 모든 생각이 일치하고 다른 생각을 가지면 큰 일 날것처럼 생각하는데, 교회는 다양한 생각과 방향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41. 획일적으로 한쪽 방향으로만 가는 곳도 아니고, 목사의 생각대로만 세워져서도 안되고, 어떤 개인의 생각이 주도적이어서도 안되는 곳입니다.

42. 베드로가 애써서 이렇게 성경을 기록하는 이유는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이들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품기 위해서 “내가 보았다”라는 말로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43. 그러니, 어쩌면 교회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내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것때문에 힘든 것이지, 보여지는 현상이 우리를 절대로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44. 사람이 많아지면 복잡해 집니다. 생각들이 다양하면 내 생각과 부딪히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불편하게 될 수 있습니다.

45. 교회는 원래 그런 곳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힘들어 하고 고난 스럽다고 하는 것은 “내 생각과 방향이 틀리다고 판단”하기때문에 그렇습니다.

46. 교회는 원래 생각이 다르고 성향이 다른 자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고향도 다르고, 정치적인 색깔도 다르고, 좋아하는 음악도 다르고, 삶의 목적과 가치도 다른 이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47. 그러니 조금씩 다른 것은 아무 문제도 아니고, 크게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큰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48. 베드로는 지금 교회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거부하는 자들을 쫓아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품어 안고, 함께 고민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입니다.

49. 이 말은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늘 만만치 않은 시간을 보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교회가 사랑이 없다, 교회에서 관심이 없다. 교회안에 은혜가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베드로의 심정을 이해한다면 교회안에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라,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뜨겁게 사모하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려고 하는 마음이 없고, 누군가가 대신 뭔가를 해줘야하는 것을 기대하는 마음만 있기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50. 여기에 베드로가 하는 것은 나는 “보았다”라는 말로 그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춘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51. 19절에 베드로가 하고 싶은 중요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52. “또 우리에게는 더욱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날이 새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여러분은 어둠 속에서 비치는 등불을 대하듯이, 이 예언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

53. 이해할 수 없는 현상, 혹은 죽어도 동의할 수 없는 생각이나 의견때문에 사람들이 갈등합니다. 대부분의 어려움은 이런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54. 삶이 원하는 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습니까? 잘 아시는 것처럼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게 삶입니다.

55. 자식이 부모 원하는 대로 되는 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그렇지 않았기때문에, 저는 일찌감치 포기했습니다.

56.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을 늘어 놓는 자들을 향해 베드로가 오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57. 19절에 전하는 베드로의 고백을 이번 한주간 동안 계속해서 묵상했습니다. 물론 전하는 내용은 단순한데 제가 깊이 생각하는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베드로는 우리들의 삶이 마치 긴 어둠을 지나는 것과 같다고 표현한 것 같습니다.

58. 그래서 날이 새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시간이 정해진 듯하지만, 사실 이 시간을 간단하게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의 개념이 아니라, 긴 어둠을 지내는 지루함이나 막막함 혹은 두려움을 상징하는 것이고, 그 어둠이 사라질 날이 새는 시간은 정해진 시간이 아닌, 막막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59. 그리고, 베드로가 이야기하는 현실은 막막함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표현인 “어둠”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60. 이 어둠은 간단하게 “어둠”이라고 번역했지만, 원래 단어의 의미에서 “모호한” 혹은 “알 수 없는” 이라는 표현을 포함하고 있으니,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과 함께, 답을 알 수 없는 모호함들이 삶에 가득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61. 아마 이런 비슷한 것들을 깊이 경험해온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삶에 대한 이해때문에 혹은 관계때문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 때문에, 때로는 신앙때문에, 교회 공동체 때문에 답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어둠을 지내온 분들 혹은 지나가고 있는 분들 앞으로 지낼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62. 베드로는 이런 것을 “어둠”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63. 그런데, 이런 어둠을 비추는 등불을 대하듯이 “예언에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합니다.

64. “주의를 기울이라”고 번역했지만,“든든히 붙잡으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65. 베드로는 이 어둠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임을 드러내는 정관사를 사용해서 이 문장을 표현했습니다.

66. 어둠은 누구나 있습니다. 저나 여러분들도 이 어둠과 모호함이 인생에 가득할 것입니다.

67. 젊은 사람이나, 나이든 사람이나 우리들은 늘 이 어둠에 삶이 몰아쳐질 것입니다.

68. 그런데, 베드로가 말씀한대로, 어둠에 등불을 보듯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희망을 드러내는 불빛을 보듯이 “말씀”을 붙들라는 것입니다.

69. 우리가 붙들어야 할 말씀은 21절에 “성령에 이끌려서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말씀”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70. 단순히 성경말씀을 붙들라는게 아니라, “성령에 이끌려서”라는 표현에 눈이 가야합니다.

71. 성령은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을 때, 경험되어졌습니다. 그때 부터 성경은 “성령”을 언급할 때 마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예배하였다는 모임을 통해 성령이 역사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72. 이 말은 어둠속에 우리가 붙들어야 할 등불 같은 예언의 말씀은 우리가 모였을 때 경험되어지는 성령의 감동으로 주어진다는 의미입니다.

73. 예배하고, 기도하고, 함께 찬양할 때 성령의 역사를 경험할 때 목격하는 말씀에서 우리는 어둠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74. 초대교회나 지금 우리들이나 겪는 고난이나 어려움은 비슷합니다. 그러니 오늘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교회의 예배를 통해 그리고 성도의 교제를 통해주시는 성령의 역사가운데 읽혀지는 말씀을 붙들고 주님과 든든히 동행하시며, 교회공동체를 세워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75. 개인적으로 힘든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도 우리가 함께 힘들어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럴 때 베드로는 우리에게 어둠을 지내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 등불 같은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도록 노력해야합니다. 그 말씀은 함께 모여서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할 때 읽혀지는 말씀입니다.

76. 이것을 기억하시고, 더욱 힘을 내어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모든 힘든 것을 이겨내므로 열린교회 공동체를 세워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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