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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9일 수요일, 출애굽 11장-12장




그 날 밤에 주님께서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시려고 밤을 새우면서 지켜 주셨으므로, 그 밤은 '주님의 밤'이 되었고,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밤새워 지켜야 하는 밤이 되었다. (출 12:42)

유월절의 기원이 기록된 오늘 보문은 바로를 무릎 꿇린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 처음 난 것이 죽는 재앙이 넘어갔다.(Passover)는 의미로 유월절은 지켜졌습니다.


여기에서 어린양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의미와 함께 구원의 상징으로 기억되게 한 사건이 바로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출애굽이 실현되게 한 이 사건은 애굽에게는 큰 재앙이었고, 히브리인들에게는 “하나님이 누구인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일어난 사건입니다.


유월절 절기와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공동적인 흐름은 대속의 의미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심판이 패스오버했다는 것이 구속사적 관점에서 보는 구원의 이해입니다.


구원은 누군가에게는 심판이고 누군가에게는 은혜로 해석하게 하는 것은 유월절의 영향입니다. 여기에 한가지더 생각해봐야 할 것은 유월절의 방향은 심판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방향에서 이루어진 사건이라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바로는 하나님과 대적했고, 하나님이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조롱했습니다. 이런 바로를 넘어서야 진행될 출애굽을 위한 심판이 오늘 본문에서 기록되었습니다. 심판은 순종의 반대이지 구원의 반대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묵상

하나님의 구원의 방향은 순종으로 결정됩니다.


중보기도

1.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2.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3. 질병가운데 있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오늘의 실천

대한민국 새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하기

안쓰는 코드 빼기



무리가 모여들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구하지만, 이 세대는 요나의 표징 밖에는 아무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과 같이, 인자 곧 나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서,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할 것이다. 그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부터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아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서,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할 것이다. 그들은 요나의 선포를 듣고 회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아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 눅11:29-32)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세계의 유류가격이 폭등하고 있습니다. 길을 지나다가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가스 가격에 어디 이것만 오를까 하는 걱정이 가득합니다. 한국은 대통령 선거로 밤새 마음을 조리며 결과를 보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경제 걱정, 고국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고 나면 그렇게 걱정스러운 것들이 조금 편안한 시간이 오기를 소망하지만, 아마 그순간이 오면 우리들은 또 다른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어제 멀리서 두분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한분은 저를 인터뷰하기 위해 공보부에서 일하시는 목사님이 건 전화였고, 또 다른 한분은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 상의하려고 전화를 건것입니다. 긴 펜데믹의 여백을 뚫고 각자의 소식과 부탁을 위해 연락을 주신 분들과 이야기를 나눈 이후에 든 생각은 삶은 늘 분주함과 다양한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삶이 몰아치다보면, 그리고 그 순간에 너무 몰입하다보면 그 너머는 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몰아치는 현실은 지나칠 수 없고,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삶이 거기에서만 머문 듯 살아가는 것은 곤란합니다. 요나의 표징과 솔로몬을 찾은 시바여왕의 이야기는 유명하지만, 그것이 전부인양 거기에만 머물면 새롭게 선포되는 복음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고난을 온몸으로 받으신 주님을 기억하는 사순절은 고난에 몰입하지 않고 고난 너머에 마련된 하나님의 꿈에 몰입한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고난을 극복하는 것은 고난이 사라져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고난 그 너머를 볼 수 있는 마음을 통해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늘 그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존재들입니다.


묵상

지금 어떤 것에 붙들려 계신가요? 그 너머를 보는 마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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