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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9편-21편, 5월10일 화요일



어떤 이는 전차를 자랑하고, 어떤 이는 기마를 자랑하지만, 우리는 주 우리 하나님의 이름만을 자랑합니다. (시편20:7)

살면서 자랑한것이 얼마나 많은지, 아이자랑 부터, 칭찬받은거, 어쩌다 잘된 것들, 혹은 갑자기 주어진 자리나, 물질의 축복에 자랑이 앞서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모두 이런 비슷한 자랑거리들이 주어지지만, 이것을 표현하는 모양은 각기 다릅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은 말하는 지혜인것 같습니다.


자랑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다릅니다. 진심으로 함께 기뻐하는 사람도 있지만, 또 저런다 하면서 핀잔을 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또 복잡한 감정의 카테고리들이 나뉘어집니다. 질투를 해서 그렇게 반응한다는 사람도 있고, 속도 없으니 저렇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것이 정답인지 모르는 순간적인 감정의 표현과 반응에 따라 주어지는 평가가 제각각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랑이 지나친 것보다 드러나지 않는 것이 품위를 지키게 하고, 드러내놓고 질투하기 보다는 좋은 자극이 되면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노력으로 드러나니 이상적인 반응은 이런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될까요?


하나님 앞에선 왕들에게 중요한 주제는 왕이면서 하나님께 겸손한 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겸손한 왕이라는 것이 용납할만한 표현인지 모르지만,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왕은 하나님앞에서 바로섰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에 따라 흥망성쇄가 함께했다고 믿었기때문에 왕이 겸손해야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여기에 목회자나, 사회지도층이나, 교회중직들도 마찬가지로 이와 비슷한 관점이 적용되어집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지 않은 자는 성직자일지라도 하나님 없는 것처럼 남용하며 살아가는 것을 목격합니다. 간단하고 많이 들어온 겸손, 혹은 순종, 하나님앞에서 바로선 자라는 표현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시편의 노래는 우리를 깊은 사색의 공간으로 초대합니다.


지난밤 무서운 악몽을 꾸었습니다. 예배시간이 임박했는데 설교원고가 사라진 것입니다. 꿈이 얼마나 사실적인지 설교내용을 기억하느라 진땀을 빼는 상황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꿈에서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습니다. 제가 마려한 시간이 늦어지자 찬양으로 간증으로 그 시간을 채워주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실명과 누가 어떤 것을 했는지는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어디까지나 꿈이라서요 ^^) 그 고마움이 아침에 제 마음에 가득차오른듯 합니다. 그러니 오늘 시편 말씀이 특별하게 마음을 적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듯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어쩌면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며 사는 것을 즐기며 산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묵상

자신을 겸손하게 만든 사건이나 교만하게 만든 기억이 있으신가요?


중보기도

1. 하와이 아름다운 연합감리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2. 교회에서 이런저런 일을 맡아하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3. 아픈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건강해지도록 기도해주세요.

4. 속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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