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아침 말씀 묵상
매일 아침 성경말씀과 교회 이야기 그리고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열린교회 아침묵상입니다.


Ephesians 2:1–7, Friday, May 15, 에베소서 2:1-7, 5월15일 금요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 2:4, 새번역) 오늘 본문은 "너희가 허물과 죄로 죽었더니"로 시작합니다. 좀 무거운 시작입니다. 죽었다는 말입니다. 숨이 멎은 것이 아니라, 방향이 잘못된 채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르고, 육체의 욕심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읽으면서 이게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향을 잃고 살아가는 것, 무엇이 중요한지 모른 채 바쁘게 움직이는 것, 이것이 죽음의 다른 이름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바울이 여기서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살았으며." 나도 그랬다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도 그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과거를 알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Bkumc 열린교회
7시간 전4분 분량


Luke 24:44–53, Thursday, May 14, 누가복음 24:44-53, 5월14일 목요일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눅 24:48, 새번역) 누가복음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계신 마지막 순간입니다. 곧 떠나실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하시는 일이 좀 인상적입니다. 거창한 의식이 아니라 말씀을 풀어서 전하십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을 이야기하시면서, 이 모든 것이 나에 관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십니다.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하신다". 성경을 이해하는 것이 단순히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열려야 보이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본문을 읽어도 어떤 날은 그냥 지나가고, 어떤 날은 말씀이 심장에 꽂히는 경험을 합니다.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늘 궁금했는데, 오늘 본문이 그 답을 주는 것 같습니다. 내가 여는 것이 아니라, 열어주시는 분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성경필사를 해보시면 필사에 힘을 쓰느라 본문내용이 들어오지 않을때
Bkumc 열린교회
1일 전4분 분량


John 16:16–24, Wednesday, May 13, 요한복음 16:16-24, 5월13일 수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요 16:20, 새번역)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제자들이 서로 묻습니다. "조금 있으면이 무슨 말인가?"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당연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십자가와 부활을 가리키는 것인데, 그것을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냥 수수께끼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묻지 못합니다. 서로 수군거리기만 합니다. 왜 직접 물어보지 못했을까요. 이미 몇 번 물어봤다가 이해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어서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모른다는 것을 드러내기가 민망해서일 수 있습니다. 이것도 우리와 닮아 있습니다. 모르면서도 아는 척, 이해 못했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고 들어본것처럼, 아는것처럼 구는 것, 한번쯤을 경험해본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그 마음을 아십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울고 애통하
Bkumc 열린교회
2일 전4분 분량


“1 Peter 3:8–12, Tuesday, May 12”, 베드로전서 3:8-12, 5월12일 화요일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벧전 3:8, 새번역) 오늘 본문은 짧습니다. 그런데 읽으면서 좀 무거워졌습니다. 짧은 만큼 더 직접적으로 와닿았습니다. 베드로가 말하는 것들이 거창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라. 동정하라. 형제를 사랑하라. 불쌍히 여기라. 겸손하라. 들으면 다 아는 말들입니다. 교회 다니면서 수도 없이 들어온 말들입니다. 그런데 왜 이게 이렇게 어려울까요. 같이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맞지 않는 사람이 생깁니다. 같은 예배를 드리고, 같은 말씀을 듣는데,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상처를 받는 것이 세상에서 받는 상처보다 더 오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다를 줄 알았는데, 라는 배신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이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그런 공동체였을 것입니다. 흩어진 나그네들이 모인 곳
Bkumc 열린교회
3일 전4분 분량


Acts 27:13–38, Friday, May 8, 사도행전 27:13-38, 5월8일 금요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행 27:22, 새번역) 남풍이 순하게 불기 시작했습니다.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몰아칩니다. 순식간에 상황이 뒤집힙니다. 배는 통제를 잃었습니다. 짐을 바다에 던집니다. 배의 기구들도 던집니다. 며칠째 해도 별도 보이지 않습니다. 누가 봐도 끝난 것 같은 상황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였다." 여기서 바울이 일어납니다. 분위기를 읽고 조용히 있을 법도 한데, 바울이 먼저 말을 꺼냅니다. 솔직하게 시작합니다. "여러분, 내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피해를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좀 뼈가 있는 말입니다. 그래도 맞는 말이니까. 그런데 바울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안심하십시오." 바울이 안심하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다. 간밤에 천사가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Bkumc 열린교회
5월 8일4분 분량


Acts 27:1–12, Thursday, May 7, 사도행전 27:1-12, 5월7일 목요일
"항해가 이미 위험하여 금식하는 절기도 이미 지났으므로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행 27:9, 새번역) 바울이 배를 탑니다. 죄수 신분으로. 로마로 압송되는 길입니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는데, 상황은 전혀 녹록지 않습니다. 계절이 좋지 않습니다. 항해하기엔 이미 늦은 시기입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이 항해가 위험합니다. 짐과 배뿐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피해가 있을 것입니다." 경고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듣지 않습니다.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신뢰합니다. 전문가의 말을 들은 것입니다. 항해 전문가들이 괜찮다고 하니까요. 게다가 지금 정박해 있는 항구가 겨울을 나기에 좋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더 좋은 항구가 있다고 합니다. 뵈닉스라는 곳입니다. 합리적인 판단처럼 보입니다. 전문가들도 동의합니다. 더 나은 곳이 눈앞에 보입니다. 남풍도 순하게 불기 시작합니다. 출발하기에 완벽한 조건처럼 보였습니다. 여기서 잠깐
Bkumc 열린교회
5월 7일3분 분량


John 8:31–38, Wednesday, May 6, 요 8:31-38, 5월6일 수요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2, 새번역)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너무 많이 들어서 오히려 잘 안 들리는 말이 있습니다. 이 구절이 그렇습니다. 현판에도 새겨지고, 졸업식 축사에도 등장하고,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본 말. 그런데 오늘 이 말이 나온 맥락을 보니,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발끈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우리가 언제 종이었냐는 것입니다. 자존심이 상한 겁니다. 그런데 이게 좀 이상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조금만 알면 이 말이 얼마나 어색한지 바로 보입니다. 이집트에서 노예였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로마의 지배 아래
Bkumc 열린교회
5월 6일3분 분량


Acts 7:44–56, Tuesday, May 5, 사도행전 7:44-56, 5월 5일 화요일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행 7:56, 새번역) 스데반의 설교가 끝을 향해 달려갑니다. 앞에서는 아브라함, 요셉, 모세 이야기를 차분하게 풀어냈는데, 여기서부터는 톤이 달라집니다. 직접적입니다. 날이 서 있습니다. "목이 굳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는 언제나 성령을 거역하는구나." 공회 앞에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보통 용기가 아닙니다. 스데반이 하고 싶었던 말의 핵심이 여기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증거의 장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지시하신 대로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습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 그리고 사람들은 그 건물 안에 하나님을 가두기 시작했습니다. 스데반은 바로 그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합니다. 하늘이 내 보좌요, 땅이 내 발판인데 너
Bkumc 열린교회
5월 5일4분 분량


Acts 7:1–16, Friday, May 1, 사도행전 7:1-16, 5월1일 금요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의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행 7:3, 새번역) 스데반이 공회 앞에 서 있습니다. 고발을 당한 겁니다. 성전을 모독하고 율법을 거슬렀다는 혐의입니다. 대제사장이 묻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냐?" 그런데 스데반의 대답이 좀 특이합니다. 예, 아니요로 대답하지 않습니다. 역사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처음엔 왜 이러나 싶었습니다. 목숨이 걸린 자리에서 갑자기 족장들 이야기를 꺼내다니. 그런데 가만히 읽다 보면, 스데반이 하고 싶은 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늘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일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성전이 없던 시절입니다. 예루살렘도 없던 시절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떠나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떠났습니다. 가나안에 도착했지만, 발 붙일
Bkumc 열린교회
5월 1일4분 분량


Matthew 20:17–28, Wednesday, April 29, 마 20:17-28, 4월29일 수요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마 20:26, 새번역)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제자들을 따로 불러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말씀하십니다. 잡히고, 넘겨지고, 조롱받고, 채찍질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이다. 사후예언의 내용입니다. 복음서는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기록되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마태복음은 예수님께 일어날 일을 미리 예언하신 것을 교회에 알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일어난 일을 알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수를 믿는 공동체다. 이어지는 다음 장면은 좀 당황스럽게 읽혀집니다.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부탁이 있다고 합니다. "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이 죽겠다고 방금 말씀하셨는데, 그 자리에서 자기 아들들 자리 챙기는
Bkumc 열린교회
4월 28일6분 분량


Ezekiel 34:23–31, Tuesday, April 28, 겔 34:23-31, 4월28일 화요일
"내가 그들과 평화의 언약을 세우고, 악한 짐승들을 이 땅에서 없애겠다.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도 안전하게 살고, 숲 속에서도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겔 34:25) 목자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시작이 좀 무겁습니다. 양들을 돌봐야 할 목자들이 오히려 양들을 착취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살진 양은 잡아먹고, 병든 양은 내버려두고, 잃어버린 양은 찾으러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직접 내 양들을 찾겠다." 목자가 일을 못 하면, 내가 목자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목자를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다윗 같은 목자를. 다윗은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다윗 같은 사람, 다윗의 계보에서 올 누군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게 누구인지 압니다. "내가 그들과 평화의 언약을 세우겠다." 이 말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평화의 언약. 요즘처럼 뭔가가 계속 흔들리는 시절에, 언약이라는 단어가 묵직하게
Bkumc 열린교회
4월 28일3분 분량


1 Peter 2:9–12, Thursday, April 23, 벧전 2:9-12, 4월23일 목요일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벧전 2:9, 새번역) 이민자로 산다는 것은 어딘가 늘 어중간한 느낌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에 가면 미국 사람입니다. 한국말을 하면서도 가끔 단어가 막히고, 영어를 하면서도 뉘앙스가 아슬아슬합니다. 명절이 되면 고향 생각이 나는데, 막상 고향에 가면 내 자리가 없습니다. 여기가 집인지, 거기가 집인지. 오래 살수록 이 질문은 답이 나오기는커녕 더 묘해집니다. 어제 최병현 교수님이 번역한 징비록 출판 기념회에 잠깐 시간을 내서 다녀왔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한글로도 읽어본 적 없는, 영어로 번역된 책을 기념으로 받아 들고는 왠지 뿌듯함이 밀려왔습니다. 우리들이 깊이 아는 걸, 이제야 접하는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다는 것. 여전히 뿌리는 한국이라는 것에 조용히 동의한 순간이었습니다. 어중간한 것 같지만, 뿌리는 분명히 있습니다. 베드로가
Bkumc 열린교회
4월 23일4분 분량


John 21:1-14 | Wednesday, April 22, 요 21:1-14, 4월22일 수요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요한복음 21:12) 실패한 밤이 있습니다. 열심히 했는데 아무것도 없는 밤. 베드로와 제자들이 딱 그랬습니다. 밤새 그물을 던졌는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부 출신들이, 자기가 제일 잘 안다는 바다에서, 한 마리도 못 잡은 것입니다. 이런 밤이 얼마나 긴지는 경험해본 사람은 압니다. 노력이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때의 그 공허함.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신 곳이 바로 그 자리입니다. 화려한 성전도 아니고, 준비된 예배 자리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새벽 바닷가입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입니다. 별 기대 없이 던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물이 올라오지 않습니다. 물고기가 너무 많아서. 요한이 먼저 알아봅니다. "주님이시다." 그 말에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듭니다. 좀 웃깁니다. 뛰어들려면 옷을 벗어야 빠른데, 겉옷을 두르고 뛰어들다니.
Bkumc 열린교회
4월 22일3분 분량


1 Peter 2:1-3 | Tuesday, April 21, 베드로전서 2:1-3, 4월21일 화요일
갓난 아기들처럼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그리워하십시오. 여러분은 그것을 먹고 자라서 구원에 이르러야 합니다.(벧전 2:2) 아침에 눈을 뜨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핸드폰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뉴스 알림, 카톡, 이메일.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무언가가 마음 안으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요즘처럼 뉴스가 많은 시기에는 더 그렇습니다. 국내정세, 국제정세 그리고 한국뉴스등 또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손이 먼저 움직입니다. 이러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뒤숭숭한 채로 하루가 시작됩니다. 베드로는 오늘 본문에서 뭔가를 "버리라"고 합니다. 악독, 속임, 외식, 시기, 비방. 읽으면서 '이게 다 내 얘기네'싶었습니다. 대단한 악인의 목록이 아니라,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마음 안에 조금씩 쌓이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을 때,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더 날카로워지고, 더 의심하고, 누군가를 탓하게 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Bkumc 열린교회
4월 21일3분 분량


Friday, April 10 — 1 Corinthians 15:1–11, 고린도전서 15:1-11, 4월10일 금요일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 내가 받은 그 은혜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고전 15:10)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묻히시고, 삼 일 만에 살아나셨다는 것. 그리고 게바에게, 열두 제자에게, 오백여 명에게, 야고보에게,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다는 것. 마지막으로 바울 자신에게도 나타나셨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스스로에 대해 만삭이 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자라는 표현으로 다른 제자들에 비해 부족한 자신을 언급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숨기지 않습니다.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기 때문에 사도라 불릴 자격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문장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 자격이 없다는 고백과, 그러나 은혜로 되었다는 고백이 한 호흡 안에 들어 있습니다. 바울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붙들고
Bkumc 열린교회
4월 10일4분 분량


Colossians 4:2–5, Thursday, April 9. 골 4:2-5, 4월9일 목요일
외부 사람들에게는 지혜롭게 대하고, 기회를 선용하십시오. (골 4:5) 바울은 기도에 힘쓰라고 말합니다. 그냥 기도하라가 아니라 힘쓰라고 합니다. 기도는 편안한 자리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힘을 쏟아야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 안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깨어 있으라고 합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지를 보겠다는 자세입니다. 졸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어서 부탁하는 내용이 눈에 들어옵니다. 전도의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해달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물리적으로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구한 것은 감옥 문이 아니라 전도의 문이었습니다. 상황이 닫혀 있어도 하나님이 여시는 문은 다른 문입니다. 우리는 자주 눈앞의 닫힌 문만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다른 문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어제 트리니티 채플
Bkumc 열린교회
4월 9일4분 분량


Hebrews 12:1–3, Wednesday, April 8, 히브리서 12:1-3, 4월8일 수요일
하나님께서 옛날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으나, (히 12:1) 어제 교회에 갔더니 풍경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가드너가 입구 도랑에 제멋대로 자라난 나무를 잘라내고, 파티오와 보이스카웃이 만든 밭의 풀도 깎아 놓았습니다. 마치 이발하고 나온 사람처럼 교회가 깨끗하고 밝아 보였습니다. 같은 건물, 같은 자리인데 무성했던 것들이 걷혀지니 햇빛이 들고 길이 환해졌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고 말합니다. 교회 마당의 가지와 풀이 잘려 나가니 밝아진 것처럼, 우리 안에 무성하게 자란 것들이 있습니다. 걱정, 두려움, 습관처럼 굳어진 게으름, 체념. 이것들이 시야를 가리고 있는데 우리는 너무 익숙해져서 그게 가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가드너가 쳐내고 나서야 "아, 이렇게 밝았구나" 하고 알게 된 것처럼, 내려놓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
Bkumc 열린교회
4월 8일3분 분량


1 Corinthians 1:18–31, Tuesday, April 7, 고린도전서 1:18–31, 4월7일 화요일
그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바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라" 한 대로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고전 1:31) 오늘 아침, 커피를 내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참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정보는 넘치고, 검색 한 번이면 모르는 것이 없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마음은 더 복잡해지고, 확신은 더 흔들립니다. 어제 한 성도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요즘 기도가 안 돼요. 머리로는 다 아는데, 마음이 따라가질 않아요." 그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머리로는 다 아는데. 우리가 자주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그 "아는 것"의 자리를 정면으로 뒤집어 놓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바울이 말하는 고린도는 지금의 우리와 참 닮아 있습니다. 헬라 철학이 꽃피던 도시,
Bkumc 열린교회
4월 7일4분 분량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_부활절 소식과 안내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열린교회 성도 여러분, 고난주간을 함께 보내며 이 편지를 씁니다. 이번 한 주, 우리는 매일 아침 함께 모여 찬양하고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준비된 간식을 나누는 소박한 시간 속에서도, 우리의 마음은 한 방향을 향해 있었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향하여. 세상은 십자가를 실패와 좌절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게 기억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남기신 마지막 말씀, "다 이루었다"—이것은 단념의 말이 아닙니다. "너희를 위해 모든 값을 치렀다"는 선언입니다. 그 십자가는 이제 죽음의 상징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깊은 사랑의 증거로 서 있습니다. 매년 봄이 되면 부활절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이 절기가 봄을 알리는 계절의 신호로만 지나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활은 우리 각자의 삶 안으로 들어오는 사건입니다. 고난 너머에 열리는 새 생명의 희망, 끝난 것처럼 보이는 자리에서
Bkumc 열린교회
4월 2일2분 분량


John 13:12–15, Friday, March 27, 요한복음 13:12–15, 3월27일 금요일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요한복음 13:14) 우리들이 세족식으로 기억하는 이 장면은 단순한 겸손의 상징이 아니라 예수님의 자기 이해와 사명의 방식이 드러나는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곧 주와 선생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의 역할을 선택하십니다. 우리는 보통 낮아지면 영향력이 줄어든다고 생각하고, 섬기면 손해 본다고 여기며, 리더는 위에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통념을 뒤집으십니다. 정체성이 분명할수록 오히려 더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권위를 포기하신 것이 아니라, 그 권위를 섬김의 방식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행동은 단순한 미담이 아니라 제자도의 기준이 됩니다. “본을 보였다”는 말씀은 선택 가능한 옵션이 아니라 따라야 할 길이라는 의
Bkumc 열린교회
3월 27일3분 분량
bottom of page
.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