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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해요

아침 말씀 묵상
매일 아침 성경말씀과 교회 이야기 그리고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열린교회 아침묵상입니다.


Hebrews 6:13–20, Friday, July 17, 히브리서 6:13-20, 7월17일 금요일
"우리에게는 이 소망이 있으니, 그것은 안전하고 확실한 영혼의 닻과 같아서,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게 해 줍니다." (히 6:19, 새번역) 7월의 시간은 선물같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더운 여름을 지내는 변곡점이기도 하고, 7월은 너무 오랫동안 온전한 방학이라는 생각때문입니다. 너무 오래 공부를 하다보니 (한국에서 군대포함, 10년, 미국에서 3년반) 6월은 남은 페이퍼로 분주했고, 8월은 곧 개강이라 분주했지만, 7월은 온전한 방학이라는 생각을 늘 해왔던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때도 전혀 일거리가 없던 7월은 정말 말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또는 충전의 시간으로 몸에 베어있는 것 같습니다. 파송을 받고 목회를 시작하면서 7월은 재파송이라는 느낌으로 분주하게 무언가를 시작하는 온전히 다른 것에는 신경안쓰고 하반기 목회를 신경쓰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짜여진 삶의 틀속에서 성경필사를 위해 교회를 방문한 분들을 뵙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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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전4분 분량


Hebrews 2:1–9, Thursday, July 16, 히브리서 2:1-9, 7월16일 목요일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바를 더욱 굳게 간직하여, 잘못된 길로 빠져드는 일이 없어야 마땅하겠습니다." (히 2:1, 새번역) 이런 드라마가 있을 정도로 축구가 재미를 더합니다. 메시라는 한 선수가 그 나이에도 엄청난 활약으로 영국을 상대로 승리를 이끌어냅니다. 전세계 스포츠 스타중에 이 선수가 지닌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문득 각 나라의 응원장면이 공개된걸 보면, 모두 똑같은 감정과 마음으로 자국의 선수들을 응원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축구에 불만을 갖는것도 이런의미에서 가능한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세계가 열광하는 축구시즌에 모두가 함께 보고 놀라고 감동받고 있는 것이니 축구라는 스포츠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에서 집에 오는 길에 보면, 잔디가 깔린 공터는 전부 축구장으로 변했습니다. 방에서 뒹굴던 축구공을 들고 아들도 친구들과 축구를 하겠다고 매일 나갑니다. 이런 열정이라면 미국이 곧 월드컵 우승을 바라보는 시간이 금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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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전4분 분량


Matthew 13:10–17, Wednesday, July 15, 마태복음 13:10-17, 7월15일 수요일
그러나 너희의 눈은 지금 보고 있으니 복이 있으며, 너희의 귀는 지금 듣고 있으니 복이 있다.(매 13:16) 요즘 월드컵이 막바지라 축구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가장 큰 묘미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언더독의 승리를 보는 것이겠죠. 스페인과 프랑스의 경기, 누구나 프랑스의 승리를 예상했었는데, 스페인이 프랑스를 축구못하는 팀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전술적으로 우위에 점유율을 높이면서 승리했습니다. 우승후보를 순식간에 축구못하는 팀으로 만들어버린 스페인의 전술은 축구는 개인이 하는 경기가 아니라, 팀전체가 전술에 의해 움직이는 경기임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또 다른 재미는 거의 질뻔한 경기를 막판에 얼마 안남은 시간에 역전승을 하는 경기이죠. 아르헨티나가 지금까지 계속 이런 쫄깃한 경기력으로 준결승까지 올라왔고 오늘 영국과 결승행을 두고 경기를 합니다. 축구를 보면 선수 개인의 화려한 기술에 감탄을 하기도 하지만, 팀전체가 상대팀을 어떻게 대처하고 준비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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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전4분 분량


Ephesians 4:17–5:2, Tuesday, July 14에베소서 4:17-5:2, 7월14일 화요일
2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자기 몸을 내어주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사랑으로 살아가십시오. (에베소서 5:2) 에베소교회는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함께 세운 교회공동체였습니다. 바울 서신에 등장한 이런 교회는 주로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 혼란을 겪습니다. 이런 에베소교회를 향해 바울은 "예수를 믿고 이전의 삶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사람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 그리고 "이런 새 모습은 혼자 드러낼 수 없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통해 들어날 수 있고 " 이 관계는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본맏아 사랑가운데 행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이 간단하고 익숙한 이야기속에 바울의 깊은 고민을 발견합니다. 당시 에베소 교회도 하나가 되는 것이 쉽지 않았고, 실제로 복음적인 삶을 사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결국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통해 우리들은 비로소 새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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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3분 분량


Romans 15:14–21, Friday, July 10, 롬 15:14-21, 7월10일 금요일
Nepal Mission: Missionary Sung Hoon Bae has sent us some photos., 네팔선교, 배성훈 선교사님이 사진을 보내왔어요. 그리스도께서 이방 사람들을 복종하게 하시려고 나를 시켜서 이루어 놓으신 것 밖에는, 아무것도 감히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 일은 말과 행동으로, (로마서 15:18) 바울이 자기 사역을 이야기하면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합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해 이루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한 사람이, 그 모든 것이 자기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 고백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한 사람일수록 내 것이라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바울이 자랑할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이라고 합니다. 내 노력이나 내 결과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해 하신 일을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역의 건강한 자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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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0일3분 분량


Romans 2:12–16, Thursday, July 9, 로마서 2:12-16, 7월9일 목요일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율법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롬 2:13, 새번역) 율법에 대한 바울의 이야기는 본인이 그토록 신봉했던 율법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분석이 녹아져있는 것 같습니다. 아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 의롭게 된다는 뜻은 결국 율법이 단순히 아는 것에 머물게 하는 한계에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듣는 것과 행하는 것. 이 두 가지가 같아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는 것을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아는 것이 많아집니다. 말씀도 많이 듣고, 설교도 많이 듣고, 신학적인 언어도 익숙해집니다. 그런데 아는 것이 많아졌다고 행하는 것이 자동으로 따라오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행하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도 정교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14절에보면. "율법을 가지지 않은 이방 사람이, 사람의 본성을 따라 율법이 명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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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일4분 분량


John 13:1–17, Wednesday, July 8 요한복음 13:1-17, 7월8일 수요일
목회자 자녀들이 매년 수련회에서 만납니다. 어릴적부터 매년 만나다보니 함께 자라는 모습을 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처럼 비슷한 삶의 모양에서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는것 같습니다 The children of pastors gather together every year at the retreat. Having met since they were young, you get to watch them grow up alongside each other. They seem to draw a great deal of comfort and courage from one another — finding in each other a steady support, shaped by lives that look remarkably similar.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요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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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4분 분량


Romans 3:1–8, Tuesday, July 7, 로마서 3:1-8, 7월7일 화요일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이지만, 하나님은 참되십니다. 성경에 기록한 바 "주님께서는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인정을 받으시고 재판을 받으실 때에 주님께서 이기시려는 것입니다" 한 것과 같습니다.(롬 3:4) 오랜만에 긴운전을 하고 안전하게 샌디에고에 도착했습니다. 다들 5번 고속도로를 운전해보셨을 테지만, 가장 지루한 운전구간은 산을 넘어가기 전 1시간정도 인것 같습니다. 베이커스 필드에 접어들어서 산을 마주하면 다 온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사실 이 구간이 가장 지루한, 곧 나올것 같은데 나오지 않는 느낌을 주는 운전구간인것 같습니다. 다 말라버려서 하얗게 변한 산들을 지나, 휴가를 마치고 또는 휴가를 떠는 많은 차량행렬을 따라 서둘러 엘에이를 지나 샌디에고 교회(이름을 예닮교회로 바꾸었어요) 6시에 도착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중간에 뷰에나파크에서 아들과 머리를 다듬고 (한국식 미장원이라 오랜만에 한국시스템에 당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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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7일4분 분량


Romans 7:7–20, Friday, July 3, 로마서 7:7-20, 7월3일 금요일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롬 7:15, 새번역)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첫 번째로 든 생각이 이것입니다. 이게 바울 이야기인가, 내 이야기인가. 바울이 하는 고백이 너무 솔직합니다. 신학자 바울이, 사도 바울이, 세 차례 선교여행을 다닌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고백들은 위로가 됩니다. 나만 이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도 이랬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결심한 것이 저녁에 무너지는 경험, 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또 하게 되는 경험, 왜 내가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는 그 경험. 바울이 정확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7절에서 바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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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일4분 분량


Romans 7:7–20, Friday, July 3, 로마서 7:7-20, 7월3일 금요일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롬 7:15, 새번역)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첫 번째로 든 생각이 이것입니다. 이게 바울 이야기인가, 내 이야기인가. 바울이 하는 고백이 너무 솔직합니다. 신학자 바울이, 사도 바울이, 세 차례 선교여행을 다닌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고백들은 위로가 됩니다. 나만 이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도 이랬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결심한 것이 저녁에 무너지는 경험, 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또 하게 되는 경험, 왜 내가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는 그 경험. 바울이 정확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7절에서 바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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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일4분 분량


Romans 7:1–6, Thursday, July 2, 로마서 7:1-6, 7월2일 목요일
"지금은, 우리를 옭아맸던 것에 대하여 죽어서, 율법에서 풀려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자에 얽매인 낡은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성령이 주시는 새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롬 7:6, 새번역) 바울이 결혼을 예로 듭니다. "결혼한 여자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법으로 남편에게 매여 있으나,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풀려납니다." 처음 읽으면 왜 갑자기 결혼 이야기인가 싶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 비유를 통해 하려는 말이 있습니다. 율법과 우리의 관계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4절에서 바울이 중요한 말씀을 전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서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다른 분, 곧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분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한것이고 이제는 율법이 아닌 그리스도안에 있다는 의미로 다시 생명가운데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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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일4분 분량


Matthew 11:20–24, Wednesday, July 1, 마태복음11:20-24, 7월1일 수요일
"고라신아, 너에게 화가 있다. 벳새다야, 너에게 화가 있다. 너희 마을들에서 행한 기적들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했더라면, 그들은 벌써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쓰고서, 회개하였을 것이다." (마 11:21, 새번역)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말씀 중에 가장 강한 어조에 속합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자기가 기적을 많이 행한 마을들이 회개하지 않으므로, 꾸짖기 시작하셨다."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 낯선 곳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가장 많이 사역하신 곳들입니다. 기적이 일어난 곳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도시들을 향해 화가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가장 많이 하신 곳에서 가장 강한 책망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기적을 가장 많이 본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기적을 보면 믿게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많이 봤다고 더 믿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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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일4분 분량


1 John 4:1–6, Tuesday, June 30. 요한일서 4:1-6, 6월30일 화요일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을 이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시인하는 영은 다 하나님에게서 난 영입니다." (요일 4:2, 새번역) 요한이 경고로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영이든지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에게서 났는가를 시험하여 보십시오." 처음 듣기에 좀 의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영적인 것이라면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은혜로운 것 같고, 신비로운 것 같고, 영적인 분위기가 나면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런데 요한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거짓 예언자가 세상에 많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시험하라는 이유가 분명합니다. 거짓이 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교회 안에 거짓 예언자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들도 영적인 언어를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럴듯한 말로, 신비로운 분위기로 사람들을 흔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이 분별의 기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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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0일5분 분량


Luke 11:53–12:3, Tuesday, June 23, 누가복음 11:53-12:3, 6월23일 화요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눅 12:2, 새번역)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의 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시는 장면입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를 캐묻기 시작합니다. 말꼬리를 잡으려는 것입니다. 함정을 놓으려는 것입니다. "맹렬히 달려들어." 적대감이 노골적입니다. 그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무리가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그 혼잡한 상황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그것은 외식이니라." 누룩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조용히 퍼집니다. 반죽 전체에 스며듭니다. 외식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 번에 확 드러나지 않습니다. 조금씩, 조용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입니다. 외식이라는 단어를 헬라어로 보면 위포크리시스입니다.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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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4분 분량


Hebrews 2:5–9, Thursday, June 18, 히브리서 2:5-9, 6월18일 목요일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히 2:9a, 새번역) 히브리서가 시편 8편을 인용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다윗이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쓴 시입니다. 별들을 보면서, 이 광대한 우주 안에 사람이 무엇이기에 하나님이 돌보시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경이로움에서 나온 질문입니다. 두려움이 아니라, 감사에 가까운 질문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가 이 시편을 가져와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읽습니다. 다윗은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히브리서는 이것이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 잠시 동안 낮아지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을 내려놓고,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죽기까지 낮아지신 것. "잠시 동안"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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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4분 분량


Luke 6:12–19, Wednesday, June 17, 누가복음 6:12-19, 6월17일 수요일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나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눅 6:12, 새번역) 예수님이 산으로 올라가십니다. 혼자서. 밤새도록 기도하십니다. 다음 날 아침에 제자들을 부르셔서 열두 명을 사도로 세우십니다. 열두 제자를 세우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앞으로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갈 사람들입니다. 교회의 기초가 될 사람들입니다. 그 결정을 앞두고 예수님이 하신 것이 회의가 아닙니다. 전략 기획이 아닙니다. 밤새 기도입니다. 아침에 컴퓨터 베터리가 방전되서 이리저리 충전기를 찾아 헤매이다 늦게 묵상을 쓰고 있습니다. 어제 밤이 소위 리트릿의 하이라이트 마지막 집회, 마지막 찬양, 아이들은 잠을 자려하지 않고, 아쉬운 시간을 붙드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않은 시간을 통과하여 아침 예배를 준비하고 있는 중에 짬을 내서 묵상을 쓰고 있습니다. 한 아이에게 빌린 랩탑 충전기를 어디에 둔지 몰라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을 생각하다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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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7일3분 분량


2 Thessalonians 2:13–3:5, Tuesday, June 16, 데살로니가후서 2:13-3:5, 6월16일 화요일
"주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켜 주실 것입니다." (살후 3:3, 새번역)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두번째 편지를 쓰는 이유는 그만큼 관심이 가지고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때문입니다. 박해는 여전했고, 교회는 흔들렸으며, 교회를 떠나는 사람, 이단적인 가르침에 교회가 어려운 상황에서 바울의 편지를 데살로니가 교회를 든든히 붙잡으려는 마음으로 담아 편지를 씁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무엇이 걱정이고, 어떤것이 문제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듭니다. 그런데 바울은 "감사하다"말로 시작합니다. 전혀 감사할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감사로 시작하는 바울의 편지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주목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감사하다는 걸까? 바울이 감사하다는 고백은 "택하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처음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선택하신 은혜에 대한 감사! 바울이 사울일때 이름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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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4분 분량


Acts 7:35–43, Friday, June 12, 사도행전 7:35-43, 6월12일 금요일
"이 모세가 광야에서 천사와 함께 있었으며 시내 산에서 말씀하시던 그분과 함께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전하였습니다." (행 7:38, 새번역) 어제 대한민국이 월드컵 예선 첫승을 해냈습니다. 교회에서 응원하는 기쁨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모임을 위해 수고한 손길에 감사드리고, 역시나 축구는 함께 보면 더 즐겁고 행복한것 같습니다. 이웃분들도 오고, 아이들은 축구가 아닌 다른 재미로 신이 났는데, 그래도 결국 축구는 이겨야 신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은 스데반이 순교전에 전한 설교내용입니다. 구제를 위해 선택받은 집사중에 하나가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늘 새롭게 일하시고 그럴때마다 사람을 들어서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 새로운일에 도구이고, 예수님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일하시는 새로운 모습으로 이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목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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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3분 분량


Hebrews 3:1–6, Thursday, June 11, 히브리서 3:1-6, 6월11일 목요일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신실하셨습니다." (히 3:6a, 새번역) 히브리서는 예수님과 모세를 연결시키는데 반복적으로 "신실함"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1절에보면, 우리를 "하늘의 부르심을 함께 받은 거룩한 형제자매"라고 부릅니다. 모세가 예수님과 연결된것처럼 우리들도 모세와, 예수님과 함께 연결된 존재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신실함으로 삶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이겠죠. 시간이 지나고, 마땅한 때가 오면 그 만한 자격이나 책임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노력과 어떤 고민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해왔는가에 따라 그 모양은 만들어지고, 삶도 세워져가는 것이겠죠. 히브리서는 우리를 그냥 그리스도인! 이라는 의미에서 신실함으로 예수와 동행하고, 모세와 같은 존재라고 이야기합니다. 지금은 이렇게 쉽게 이야기하지만, 당시 유대인들에게 이 이야기는 충격적인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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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3분 분량


Matthew 12:1–8, Wednesday, June 10, 마태복음 12:1-8, 6월10일 수요일
"The church garden is bearing fruit! ^^" 교회 텃밭에 열매가 맺히고 있어요 ^^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마 12:8, 새번역)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 사이를 지나가다가 이삭을 잘라 먹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봅니다. 그리고 따집니다. "보십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규정 위반입니다. 안식일에 이삭을 자르는 것은 수확 노동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이 좀 의외입니다. 규정에 대해 규정으로 맞서지 않으십니다. 대신 다윗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다윗이 부하들과 함께 배가 고팠을 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은 이야기입니다. 율법을 어겼지만, 정죄하지 않습니다. 제사자들이 안식일에 성전안에서 일하는 것도 율법을 어긴건데 문제 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려는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규정이 잘못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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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5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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