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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말씀 묵상
매일 아침 성경말씀과 교회 이야기 그리고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열린교회 아침묵상입니다.


Luke 11:53–12:3, Tuesday, June 23, 누가복음 11:53-12:3, 6월23일 화요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눅 12:2, 새번역)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의 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시는 장면입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를 캐묻기 시작합니다. 말꼬리를 잡으려는 것입니다. 함정을 놓으려는 것입니다. "맹렬히 달려들어." 적대감이 노골적입니다. 그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무리가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그 혼잡한 상황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그것은 외식이니라." 누룩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조용히 퍼집니다. 반죽 전체에 스며듭니다. 외식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 번에 확 드러나지 않습니다. 조금씩, 조용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입니다. 외식이라는 단어를 헬라어로 보면 위포크리시스입니다.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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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4분 분량


Hebrews 2:5–9, Thursday, June 18, 히브리서 2:5-9, 6월18일 목요일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히 2:9a, 새번역) 히브리서가 시편 8편을 인용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다윗이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쓴 시입니다. 별들을 보면서, 이 광대한 우주 안에 사람이 무엇이기에 하나님이 돌보시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경이로움에서 나온 질문입니다. 두려움이 아니라, 감사에 가까운 질문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가 이 시편을 가져와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읽습니다. 다윗은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히브리서는 이것이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 잠시 동안 낮아지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을 내려놓고,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죽기까지 낮아지신 것. "잠시 동안"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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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4분 분량


Luke 6:12–19, Wednesday, June 17, 누가복음 6:12-19, 6월17일 수요일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나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눅 6:12, 새번역) 예수님이 산으로 올라가십니다. 혼자서. 밤새도록 기도하십니다. 다음 날 아침에 제자들을 부르셔서 열두 명을 사도로 세우십니다. 열두 제자를 세우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앞으로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갈 사람들입니다. 교회의 기초가 될 사람들입니다. 그 결정을 앞두고 예수님이 하신 것이 회의가 아닙니다. 전략 기획이 아닙니다. 밤새 기도입니다. 아침에 컴퓨터 베터리가 방전되서 이리저리 충전기를 찾아 헤매이다 늦게 묵상을 쓰고 있습니다. 어제 밤이 소위 리트릿의 하이라이트 마지막 집회, 마지막 찬양, 아이들은 잠을 자려하지 않고, 아쉬운 시간을 붙드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않은 시간을 통과하여 아침 예배를 준비하고 있는 중에 짬을 내서 묵상을 쓰고 있습니다. 한 아이에게 빌린 랩탑 충전기를 어디에 둔지 몰라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을 생각하다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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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7일3분 분량


2 Thessalonians 2:13–3:5, Tuesday, June 16, 데살로니가후서 2:13-3:5, 6월16일 화요일
"주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켜 주실 것입니다." (살후 3:3, 새번역)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두번째 편지를 쓰는 이유는 그만큼 관심이 가지고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때문입니다. 박해는 여전했고, 교회는 흔들렸으며, 교회를 떠나는 사람, 이단적인 가르침에 교회가 어려운 상황에서 바울의 편지를 데살로니가 교회를 든든히 붙잡으려는 마음으로 담아 편지를 씁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무엇이 걱정이고, 어떤것이 문제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듭니다. 그런데 바울은 "감사하다"말로 시작합니다. 전혀 감사할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감사로 시작하는 바울의 편지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주목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감사하다는 걸까? 바울이 감사하다는 고백은 "택하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처음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선택하신 은혜에 대한 감사! 바울이 사울일때 이름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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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4분 분량


Acts 7:35–43, Friday, June 12, 사도행전 7:35-43, 6월12일 금요일
"이 모세가 광야에서 천사와 함께 있었으며 시내 산에서 말씀하시던 그분과 함께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전하였습니다." (행 7:38, 새번역) 어제 대한민국이 월드컵 예선 첫승을 해냈습니다. 교회에서 응원하는 기쁨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모임을 위해 수고한 손길에 감사드리고, 역시나 축구는 함께 보면 더 즐겁고 행복한것 같습니다. 이웃분들도 오고, 아이들은 축구가 아닌 다른 재미로 신이 났는데, 그래도 결국 축구는 이겨야 신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은 스데반이 순교전에 전한 설교내용입니다. 구제를 위해 선택받은 집사중에 하나가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늘 새롭게 일하시고 그럴때마다 사람을 들어서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 새로운일에 도구이고, 예수님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일하시는 새로운 모습으로 이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목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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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3분 분량


Hebrews 3:1–6, Thursday, June 11, 히브리서 3:1-6, 6월11일 목요일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신실하셨습니다." (히 3:6a, 새번역) 히브리서는 예수님과 모세를 연결시키는데 반복적으로 "신실함"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1절에보면, 우리를 "하늘의 부르심을 함께 받은 거룩한 형제자매"라고 부릅니다. 모세가 예수님과 연결된것처럼 우리들도 모세와, 예수님과 함께 연결된 존재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신실함으로 삶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이겠죠. 시간이 지나고, 마땅한 때가 오면 그 만한 자격이나 책임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노력과 어떤 고민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해왔는가에 따라 그 모양은 만들어지고, 삶도 세워져가는 것이겠죠. 히브리서는 우리를 그냥 그리스도인! 이라는 의미에서 신실함으로 예수와 동행하고, 모세와 같은 존재라고 이야기합니다. 지금은 이렇게 쉽게 이야기하지만, 당시 유대인들에게 이 이야기는 충격적인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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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3분 분량


Matthew 12:1–8, Wednesday, June 10, 마태복음 12:1-8, 6월10일 수요일
"The church garden is bearing fruit! ^^" 교회 텃밭에 열매가 맺히고 있어요 ^^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마 12:8, 새번역)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 사이를 지나가다가 이삭을 잘라 먹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봅니다. 그리고 따집니다. "보십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규정 위반입니다. 안식일에 이삭을 자르는 것은 수확 노동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이 좀 의외입니다. 규정에 대해 규정으로 맞서지 않으십니다. 대신 다윗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다윗이 부하들과 함께 배가 고팠을 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은 이야기입니다. 율법을 어겼지만, 정죄하지 않습니다. 제사자들이 안식일에 성전안에서 일하는 것도 율법을 어긴건데 문제 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려는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규정이 잘못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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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5분 분량


Hebrews 13:1–16, Tuesday, June 9, 히브리서 13:1-16, 6월9일 화요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 (히 13:8, 새번역) 히브리서의 마지막 장입니다. 긴 신학적 논증이 끝나고, 이제 실제 삶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형제 사랑을 계속하십시오. 나그네를 대접하십시오. 갇힌 자를 기억하십시오. 결혼을 귀히 여기십시오. 돈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읽다 보면 이게 2천 년 전 편지인지, 오늘 아침 내게 쓴 편지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가깝게 느껴집니다. 1절이 도전적인 말씀을 전합니다. "형제 사랑을 계속하십시오." 계속하라는 것입니다. 시작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고 있는데, 멈추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마 히브리서를 받아 읽는 공동체가 지쳐있었던 것 같습니다. 박해가 있었고, 흩어졌고, 서로를 돌보는 것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던 시절이었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계속하라는 말. 거창한 새 출발이 아니라, 이미 해오던 것을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2절은 익숙하면서도 삶에서 실제로 이런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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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5분 분량


“Acts 28:1–10, Friday, June 5”, 사도행전 28:1-10, 6월5일 금요일
"섬 사람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행 28:2a, 새번역) 배가 난파되었습니다. 276명이 살아서 해변에 올라왔습니다. 몰타 섬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입니다. "비가 내린 뒤라서 날씨가 추웠으므로, 그들은 불을 피워서 우리를 맞아 주었다."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비 맞고 추운 사람들을 위해 불을 피워주는 것. 그런데 그것이 특별한 친절이었습니다. 요즘 친절이 특별한 것이 되어가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당연한 것이 아니라 눈에 띄는 것이 되어버린 시대. 그런데 섬 사람들이 한 것은 그냥 당연한 것을 한 것입니다. 추운 사람들이 있으니 불을 피워준 것입니다. 그 당연한 것이 276명의 생존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나뭇가지를 한 아름 모아다가 불에 넣으니." 죄수 신분입니다. 로마로 압송되는 길입니다. 그런데 불을 피우는 일을 거들고 있습니다. 자기가 지금 어떤 처지인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불확실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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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5분 분량


“2 Peter 2:17–22, Thursday, June 4”, 베드로후서 2:17-22, 6월4일 목요일
"그들에게는 짙은 어둠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벧후 2:17b, 새번역) 오늘 본문은 좀 불편한 내용입니다. 거짓 선생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쓰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사람들 때문입니다. 공동체 안에 들어와서 잘못된 것을 가르치고,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사람들. 베드로의 언어가 거칩니다. 물 없는 샘, 폭풍에 밀려가는 안개. 있는 것 같은데 없는 것들입니다.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들입니다. 17절에. "그들에게는 캄캄한 어둠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어떤 마음으로 거짓교사들을 대하는 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들은 지금 당장은 화려해 보이고, 말도 그럴듯하고,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 같아도, 결국 향하는 곳은 캄캄한 어둠이라는 것입니다. 18절은 더 진지하게 지적합니다.. "그들은 허무맹랑하게 큰소리를 칩니다. 그들은 그릇된 생활을 하는 자들에게서 가까스로 빠져 나온 사람들을 육체의 방종한 정욕으로 유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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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4일4분 분량


“John 14:25–26, Wednesday, June 3”, 요한복음 14:25-26, 6월3일 수요일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분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 14:26, 새번역) 예수님이 떠나시기 전날 밤에 이야기입니다.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시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말씀하시는 자리입니다. 분위기가 무거웠겠죠. 예수님이 떠난다고 하시니, 제자들은 불안하고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마지막 자리에 "보혜사." 낯선 단어를 말씀하십니다.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입니다. 곁에서 부르는 자, 도움을 주기 위해 곁에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법정에서는 변호인을 가리키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떠나시고 나면, 곁에서 변호해주고, 도와주고, 함께 있어줄 분을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혼자 두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이 두 가지라고 합니다. 가르치는 것과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비슷해 보이지만 다릅니다. 가르치는 것은 새로운 것을 알게 하는 것이고, 생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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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4분 분량


“1 Corinthians 12:4–13, Tuesday, June 2”, 고리도전서 12:4-13, 6월2일 화요일
"은사는 여러 가지이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시고, 섬기는 일은 여러 가지이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시고, 활동은 여러 가지이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일을 하시는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고전 12:4-6, 새번역) 오늘 본문은 은사 이야기이고, 성령강림절에 나누었던 본문입니다. 은사에 대해 그리고 방언에 대해, 성령충만에 대해 바울이 주는 탁월한 가르침은 지금 우리들이 알고 있는 은사와 성령, 방언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바울이 은사를 이야기하면서 하나 됨을 이야기합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이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고, 섬김은 여러 가지이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고, 활동은 여러 가지이지만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세 번 반복됩니다. 다름을 말하는 것 같은데, 결국 같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사람이 모이면 다름이 보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을 잘하고, 어떤 사람은 뒤에서 조용히 일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가 뜨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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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5분 분량


2 Timothy 1:12b–14, Friday, May 29, 디모데후서 1:12b-14, 5월29일 금요일
호박이 열렸어요.심을때까지는 잘 몰랐는데 이렇게 금새 이렇게 열매가 "나는 내가 믿어 온 분을 알고 있으며, 그분은 내가 그에게 맡긴 것을 그 날까지 지켜 주실 능력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딤후 1:12b, 새번역) 어제 본문에서 바울은 고난 앞에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 이유가 더 선명해집니다. "나는 내가 믿어 온 분을 알고 있다." 믿음의 대상을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온 시간 속에서 알게 된 분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쓴 "알고 있다"는 말에는 긴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그 순간부터, 감옥과 매질과 파선과 돌에 맞는 시간을 지나오면서 쌓인 앎입니다. "그분은 내가 그에게 맡긴 것을 그 날까지 지켜 주실 능력이 있다." 맡겼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께 무언가를 맡겼습니다. 자기 생명인지, 자기 사역인지, 자기가 이루지 못한 것들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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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4분 분량


“2 Timothy 1:8–12a, Thursday, May 28”, 디모데후서 1:8-12a, 5월28일 목요일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한 일에 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목적과 은혜에 따라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딤후 1:9, 새번역)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씁니다. 감옥에서 쓴 편지입니다. 처형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편지의 톤이 생각보다 담담합니다. 오히려 디모데를 걱정합니다. 디모데가 복음을 부끄러워할까봐, 감옥에 갇힌 자기를 부끄러워할까봐. 바울이 자기 처지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디모데가 흔들릴까봐 걱정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이 말이 낯설지 않습니다. 신앙을 드러내는 것이 어색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모임에서. 내가 예수 믿는다는 것을 굳이 말해야 하나 싶은 순간. 십자가 이야기를 꺼내기가 왠지 민망한 순간. 바울 시대에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감옥에 갇힌 사람을 따르는 것이 당당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9절에서 부끄러워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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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8일5분 분량


John 7:37–39, Wednesday, May 27, 요한복음 7:37-39, 5월27일 수요일
37명절의 가장 중요한 날인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 일어서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로 와서 마셔라. 38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이 말한 바와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39이것은, 예수를 믿은 사람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이다.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사람들에게 오시지 않았다.(요한복음 3:38-39) 오늘 본문의 배경은 초막절 마지막 날입니다. 유대절기 중에 가장 큰 날이라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전통에 따라 실로암 못에서 물을 길어다가 성전 제단에 붓는 의식이 하는 날이었습니다. 물을 붓는 의식은 광야에서 반석을 쳐서 물을 내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의식이 절정에 달한 바로 그 순간에 예수님이 일어나서 외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타이밍이 참 절묘합니다. 제사장이 물을 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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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7일4분 분량


로마서 8:26-27, 5월26일 아침묵상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6, 새번역) 기도를 못 하겠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뭘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입니다. 무릎을 꿇고 앉았는데 말이 나오지 않는 그 순간. 기도하러 왔는데 멍하니 있다가 일어나는 때도 있는데,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도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고, 목회자도 예외가 없습니다.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정확히 그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한다." 바울의 고백입니다. 로마서를 쓴 바울이, 세 차례 선교여행을 다닌 바울이, 기도할 바를 모른다고 합니다. 이상하게 이 런 말들이 위로가 됩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어서. 기도할 바를 모른다는 것이 신앙이 약해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현실이 너무 복잡해서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풀려야 하는지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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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2분 분량


John 3:31–36 | Wednesday, May 20, 요한복음 3:31-36, 5월20일 수요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요 3:35, 새번역) 오늘 본문은 세례 요한의 마지막 증언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 때문에 불안해합니다. 선생님, 사람들이 다 예수에게로 갑니다. 그런데 요한의 반응이 담담합니다. 오히려 기뻐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자기 자리를 내어주는 것, 무대에서 내려오는 것, 그것도 기쁘게 그리 할 수 있는 것은 보기 드문닙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요한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가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신랑이 아니라 신랑의 친구라고 했습니다. 친구는 신랑을 위해 기뻐합니다. 자기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비교당해도, 밀려나도, 사람들이 떠나가도 마땅히 그렇게 되는 것에 마음을 두고 있다면 무엇이 더 중요한지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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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5분 분량


1 Peter 4:7–11, Tuesday, May 19, 베드로전서 4:7-11, 5월19일 화요일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벧전 4:10, 새번역)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쓸 때의 긴박함이 느껴집니다. 곧 끝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그 다음에 하는 말이 좀 의외입니다. 긴박한 상황에서 보통은 특별한 것을 요청할 것 같습니다. 대단한 결단, 큰 헌신, 거창한 무언가. 그런데 베드로가 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고, 서로 사랑하고, 불평 없이 대접하고, 은사대로 봉사하라. 일상적인 것들입니다. 끝이 가까운 시대에 요청되는 것이 특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일상의 신실함이라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뜨겁게라는 단어가 원어로는 근육을 최대한 늘려서 힘을 쓴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힘을 써야 하는 사랑입니다. 노력이 필요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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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5분 분량


Ephesians 2:1–7, Friday, May 15, 에베소서 2:1-7, 5월15일 금요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 2:4, 새번역) 오늘 본문은 "너희가 허물과 죄로 죽었더니"로 시작합니다. 좀 무거운 시작입니다. 죽었다는 말입니다. 숨이 멎은 것이 아니라, 방향이 잘못된 채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르고, 육체의 욕심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읽으면서 이게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향을 잃고 살아가는 것, 무엇이 중요한지 모른 채 바쁘게 움직이는 것, 이것이 죽음의 다른 이름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바울이 여기서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살았으며." 나도 그랬다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도 그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과거를 알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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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4분 분량


Luke 24:44–53, Thursday, May 14, 누가복음 24:44-53, 5월14일 목요일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눅 24:48, 새번역) 누가복음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계신 마지막 순간입니다. 곧 떠나실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하시는 일이 좀 인상적입니다. 거창한 의식이 아니라 말씀을 풀어서 전하십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을 이야기하시면서, 이 모든 것이 나에 관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십니다.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하신다". 성경을 이해하는 것이 단순히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열려야 보이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본문을 읽어도 어떤 날은 그냥 지나가고, 어떤 날은 말씀이 심장에 꽂히는 경험을 합니다.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늘 궁금했는데, 오늘 본문이 그 답을 주는 것 같습니다. 내가 여는 것이 아니라, 열어주시는 분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성경필사를 해보시면 필사에 힘을 쓰느라 본문내용이 들어오지 않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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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일4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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