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26-27, 5월26일 아침묵상
- Bkumc 열린교회
- 3일 전
- 2분 분량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6, 새번역)
기도를 못 하겠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뭘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입니다. 무릎을 꿇고 앉았는데 말이 나오지 않는 그 순간. 기도하러 왔는데 멍하니 있다가 일어나는 때도 있는데,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도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고, 목회자도 예외가 없습니다.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정확히 그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한다." 바울의 고백입니다. 로마서를 쓴 바울이, 세 차례 선교여행을 다닌 바울이, 기도할 바를 모른다고 합니다. 이상하게 이 런 말들이 위로가 됩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어서.
기도할 바를 모른다는 것이 신앙이 약해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현실이 너무 복잡해서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풀려야 하는지 내가 모르는 상황, 무엇이 최선인지 판단이 안 되는 순간, 그냥 다 엉켜있는 것 같은 시간. 그 자리에서 뭘 어떻게 구해야 할지 막막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바울이 거기에 하나를 더 붙입니다.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내가 기도하지 못하는 그 자리에서, 성령이 간구하신다는 것입니다. 내 언어가 끊기는 곳에서, 말로 담을 수 없는 탄식으로. 내가 뭘 구해야 할지 모를 때에도, 나를 위한 기도는 이미 드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탄식을 통해 들려오는 것을 듣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할 수 없는 탄식"이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깊이 이해가 됩니다. 기쁨의 노래가 아닙니다. 선포가 아닙니다. 탄식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위해 탄식하신다는 것. 우리의 고통이 하나님께 낯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거운 것을 하나님도 무겁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특별한 능력, 이미 성령받았다고 말씀드린 주일 말씀과 연결해보면, 늘 성령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기도하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27절에서 바울이 말합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하나님은 성령의 탄식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말이 안 되는 기도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신음도, 하나님은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내 기도가 서툴러서, 말이 막혀서, 형식이 갖춰지지 않아서 닿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즘 기도가 잘 안 된다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말이 막히고, 무엇을 구해야 할지 모르겠고, 앉아있어도 공허한 것 같은 그 자리. 오늘 본문은 그 자리가 기도가 없는 자리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내 말이 끊긴 자리에서, 성령이 이미 간구하고 계십니다.
지난주 교회 홈페이지 블로그 기능에 제한이 걸려서, 몇일 묵상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은 일어나고 어쩔수 없는 것들과 씨름하는 일들은 언제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때 성령께서 말할수 없는 탄식으로 대신 기도하고 간구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묵상
내 말이 끊기는 곳에서, 성령의 기도가 시작됩니다.
중보기도
이번주 주말에 예수동행세미나가 있습니다. 24시간 예수와 동행한다는 것을 훈련한다고 이야기드렸는데, 우리들이 부족하고 이런 저런 분주함으로 텅빈 시간을 보낼때, 성령의 도움으로 간구와 기도를 올린다는 것을 확인하고 기억하는 것을 되새기는 시간입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더 성숙하게 하는 시간입니다. 기대됩니다. 그리고 기도해주세요
유스 수련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100명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함께하는 수련회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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