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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1장, 5월14일 금요일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우리가 함께 가진 구원에 관해서 편지를 써 보내려고 여러 가지로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참에 나는 이제 여러분에게 성도들이 단번에 받은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싸우라고 권하는 편지를 당장 써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유다서 1:3)

유다서는 짧은 한장이지만, 내용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선, 유다라는 이름이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도 가롯 유다와 유다서의 저자 유다는 다른 인물입니다. 본문에서는 야고보의 동생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예수님의 가족중 하나로 유다를 이해해야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를 친동생이라고 보기도하고 친척일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두가지 있습니다.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야고보가 예수님의 동생이라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친척이든 친동생이든) 이런 야고보의 동생이 유다가 이 서신을 초대교회에 쓴 이유는 초대교회안에 스며든 이단들에 대한 경계와 교회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으로 편지를 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다서의 저작시기는 150년경에서 200년 경으로 1세기 기독교와 2세기 기독교를 연결하는 시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때부터 교회는 늘 이단의 위협에 몸살을 알았습니다.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사실에 여러가지 다른 가르침을 더해야 한다는 강박이 교회안에 있었기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형사이 없는 것이 구약에서 우상을 섬기는 이유가 된 것처럼, 믿음이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보니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이런 이단의 가르침을 만들어 내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유다가 지적한 이단의 모습은 하나님의 은혜를 방종거리로 만들고, 예수를 부인하는 자들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방종거리로 만든다는 의미는 은혜를 남용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들의 삶에 경계없는 행위를 정당화 하기 위해 사용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고, 이들은 결국 예수를 부인하는 일까지 서슴없이 저지르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치 구약시대에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사는 모양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행위에 대한 유다의 경계는, 하나님의 은혜는 절대로 우리들의 방탕한 삶을 허용하는 것으로 사용해서도 안되고, 이런 행위가 지속되면서 결국 예수를 부인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교회안에 이미 이런 자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유다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은혜를 통해 기쁨과 자유를 누려야하지만, 지나친 자유는 분별없는 삶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러니 예수님 마저도 부인하는 자들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분별없는 삶은 도덕적 타락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흔히 영적 타락을 도덕적, 윤리적 개념으로 이해하게되는데, 영적타락의 의미는 하나님이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고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방탕함은 “나”중심으로 살아가는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나”중심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쉽게 저지르는 것이 예수님도 부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내”가 죽고, 예수가 살아야한다는 의미에 강하게 부딪히다 보니 예수를 부인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묵상

나 중심으로 사는 것이 왜 죄가 될까요?


중보기도

  1. 박두진 권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2. 인도의 코로나바이러스가 진정되도록, 이번주 부터 12세 이상 백신을 맞게됩니다.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서, 가을이 오면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학교에 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3.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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