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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3장, 3월10일 목요일



주님께서는, 그들이 밤낮으로 행군할 수 있도록, 에는 구름기둥으로 앞서 가시며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앞 길을 비추어 주셨다. (출 13:21)

출애굽이 우역곡절 끝에 시작되었습니다. 길을 떠나기전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몇가지 당부를 합니다. 첫번째 소생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미는 아마도 유월절에 살아남은 생명들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런 고백에 따라서, 첫열매를 하나님께 드린다고 첫째가 목회자가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됩니다.


한가지 의아한것은 하나님이 가나안땅으로 가는 길을 가까운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가까운 길은 빈번한 전쟁을 해야하는 길이기때문에 먼길을 돌아서 가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쟁에 놀란 이스라엘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출애굽의 역사는 히브리 노예들이 해방되는 사건이라고 이야기하지만, 한편으로는 애굽에 이미 삶의 모든 것들이 정착된 편안한 삶에 있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합니다. 광야의 여정에서 애굽에서 지내던 삶을 그리워하며 모세를 원망했던 것처럼 이스라엘의 출애굽 과정은 해방의 날로 기쁨으로 모두가 길을 떠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자신들의 익숙한 삶을 버리고 모험과 고난이 도사리는 긴 여정에, 오직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라 길을 나선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꿈이라는 것은 어쩌면 지금 안주하는 삶이 아닌 그 너머에서, 즉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한 노력과 헌신으로 실현되는 것 같습니다. 가나안땅은 이런 의미에서 희망의 공간이면서도 믿음의 성숙함이 실현되는 여정을 이끄는 목적지라고 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교회 공동체도 이런 꿈과 소망으로 그 목적지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보내는 시간에 익숙해져서 안주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너머에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실까? 하는 기대로 가득한 공동체는 하나님의 이끄심에 전적으로 모든 것을 맡기며 새로운 여정을 준비하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영적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무시는 것에 힘을 쏟으시나요? 아니면 이끄심에 용기를 가지고 걸어가시나요? 이 소망의 여정에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묵상

우리들이 가야할 곳은 어디라고 생각하세요? 우리 교회가 앞으로 어떤 하나님의 꿈을 위해 모험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세요?


중보기도

1. 장명숙 집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백혈구 수치가 떨어져서 어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 생기는 과정이긴 하지만, 잘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2. 소망회 회원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건강히 교회에서 다시 뵐날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3. 교회학교와 유스, 청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오늘의 실천

교우 중에 오랫동안 연락못한 분께 전화해보기


 

사순절 묵상


“구하여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리하면 너희가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구하는 사람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사람마다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너희 가운데서 아들이 빵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으며,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 ( 마 7:7-12)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것이고, 간구는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기위해 최선을 다해 기도한 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 곧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간구는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이에 대한 응답은 기도를 통해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닌 다르게 응답하시는 것을 경험할때도 있습니다. 그러니 간구의 응답이 꼭 내 맘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 청년예배에서 드리는 찬양중에, “주님께 축복을 받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라, 그저 곁에만 있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고백의 찬양을 드렸습니다. 우리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늘, 우리들이 원하는대로 또는 간구 하는대로 이루어져야 은혜이고 축복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주님곁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고백이 참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정말로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살 수 있을까? 한국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부자가 되는 방법중에 집을 대출을 안고 여러채를 사면 집값이 오르는 대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마 세금이 높지 않아서 가능한것 같은데, 잠깐 와계신 어머니를 통해서 교회안에서 성도끼리 이런 정보를 주고 받으면서 집을 사서 모으는 것을 자랑하는 분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상이 다 그렇게 한다고 교인들도 그렇게 살면 우리는 무엇이 다르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 까지 되었을까 싶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정말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묵상

어떤 만족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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