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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23장, 10월21일 목요일



네가 그런 형벌을 당하게 될 것이니, 이는 네가 이방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음행을 하고, 그들의 여러 우상으로 네 몸을 더럽혔기 때문이다. (에스겔 23: 30)

고등학교때 다니던 학교는 스쿨버스가 있었습니다. 집앞에 버스 정류장 근처에 학교버스를 기다리면 여학교 버스를 기다리는 여학생들과 길면 10분에서 짧으면 3분을 같은 공간에 머뭅니다. 거의 3년 가까이 그렇게 같은 자리에서 학교를 다니니, 말을 한마디 걸어보지 못했어도 서로 얼굴은 익숙하고 몇학년 정도인지는 알게됩니다. 어쩌다 길에서 마주치면 알면서도 모르척하는 어색함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버스를 타고 친구들을 만나러가는데, 앞자리에 앉아있는 그 학생과 마주쳤습니다. 3년을 말한마디 안했는데, 졸업하고 만나니 반가움에 그 학생이 인사를 건네고 저도 인사를 건네고 10분정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학교졸업하니 어떠냐, 대학생활은 어떠냐 뭐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고는 서로 “굿 럭"을 이야기하고는 헤어졌습니다.


긴시간의 침묵은 어쩌다 10분으로 매워지는 경험을 한것 같습니다.


주저함 혹은 망설임 그리고 딱히 뭐 이야기를 나눌 의무는 없지만, 이런 것들이 관계를 어색하게 할 수 있다는 어떤 청년의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그런데, 순간의 어색함은 갑작스러운 공간, 혹은 시간안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풀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에 비해, 차별적인 의식은 우리를 꽤 큰 선입관, 경험없음의 공간에서 상대를 쉽게 외면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게 합니다. 이런 허우적거림은 더 깊은 차별과 구별의 공간으로 우리를 몰아 넣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사마리아는 역사의 아픈 손가락이면서 더이상 이스라엘과 함께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앗수르의 혼혈정책으로 강제로 국제결혼을 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사마리아입니다. 북왕국으로 대표할수 있는 사마리아는 남유다에게 벌어진 일과 비교해보면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고 선언하는게 오늘 말씀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사마리아나 남유다나, 그런 뜻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선언은 꽤 충격적인 선언입니다. 북왕국의 멸망이나 남왕국의 멸망이나 하나님앞에 바로서지 못한 행위는 똑같으니 사마리아가 차별을 당할 이유가 없다는 선언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포로기 이후에 사마리아가 이스라엘 공동체에 함께하기를 원하지만, 철저하게 사마리아를 배제시키고 상종하면 안된다는 의식은 예수님의 공생애 활동에서도 잘 드러나기 때문에, 오늘 에스겔을 통해 선포된 말씀은 소위 순수한 혈통을 가진 이스라엘을 부끄럽게 하는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묵상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에게 어떤 존재였을까요?


중보기도

  1. 박두진 권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건강히 회복되도록 기도해주세요.

  2. 교회학교, 유스부, 청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3. 소망회 회원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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