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8 : 1~14, 2025.03.04 (화)
- 열린교회BKUMC
- 3월 4일
- 2분 분량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쪽 귀를 잘라버렸다. 그 종의 이름은 말고였다.(요한복음18:10)
날씨가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 비슷한게 온듯합니다. 주일에 비가온후 쌀쌀해진 날씨에 아침 저녁으로 움츠려듭니다. 이걸 꽃샘추위라고 부르는 선조들의 언어유희는 경이롭습니다. 모든 것에 생명과 감정을 넣고는 그 안에서 사람과 같은 마음으로 세상 이치를 바라보는 것은 세상의 이치도 곧 우리들의 마음과 같다는 생각에서 그리한 듯 합니다.
한국에도 살아보고, 미국에도 살아보면 이런 저런 차이가 있지만, 환경과 문화적 차이를 빼면 거의 사는 모습은 비슷해보입니다. 인종도 다양하지만, 개인적으로 볼때 인종과 상관없이 사람은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를 늘 어렵게 하는 것은 선입관이 적용되는 환경에서 어떻게 하면 내가 판단하고 내가 생각하는대로 살아갈 수 있는가가 중요한 삶의 방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성경본문에는 잘 기억하지 않는 한 사람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말고", 이사람은 대제사장의 종이라고 소개하고 있고, 베드로가 예수를 잡으러온 대제사장 무리들을 칼로 내리쳤는데 그때 오른쪽 귀가 잘려나간 사람이 "말고"라는 사람입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기록되어있지 않은 "말고"라는 사람의 이름을 요한복음은 자세히 기록하고 그 이름까지도 기억하게 끔 기록했습니다. "말고"
다른 복음서에서도 "귀가 잘리는 장면"은 등장하지만, 귀가 잘린 사람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특별히 귀가 잘린 사람을 예수님이 만지셔서 고치셨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누가복음 예수님의 행위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요한복음은 "사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이름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온땅의 주인"이라는 찬양에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나는 오늘 피었다 지는 이름없는 꽃과 같네, 바다에 이는 파도 안개와 같지만 주는 나를 붙드시고 부르짖음 들으시며 날 귀하다 하시네"
한참 펜데믹때 들었던 찬양인데 여기서 드러나는 이름보다 늘 기억해야할 것은 "오늘 피었다 지는, 파도와 안개같이 곧 사라지는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는 것이 하나님앞에 서있는 우리들의 고백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요한복음이 이례적으로 "말고"라는 이름을 등장시킨것은 이 사람이 특별함 보다. 기억하게될지는 모르지만, 이 한 사람의 존재가 예수의 고난이 시작되는 시점에 먼저 "고난"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는 것, 예수님은 베드로를 말리고 온전히 그 고난으로 걸어가시겠다고 하는 바로 그 시작점에 기억할수 없는 이름을 등장시킴으로 모두가 드러나고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거룩한 고난의 발걸음에 모두가 목격하고 동행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순절기, 고난이 중심이 아니라, 그 고난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신앙적 결단에 무게를 두시기 바랍니다.
묵상
이름이 드러나 보인적이 있으신가요? 보통 사람들이 본인을 기억하는 편인가요? 다른 이를 기억하는 편인가요?
중보기도
박정자 권사님이 수술을 잘 마쳐서 집에서 가료중입니다. 계속해서 기도해주세요.
이번주 수요일에 낮 10시와 저녁 7시 모임이 있습니다. 이번주일은 재의 수요일이라 뜻에 맞게 예배를 준비하고 간단하게 성경공부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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