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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말씀 묵상
매일 아침 성경말씀과 교회 이야기 그리고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열린교회 아침묵상입니다.


“1 Corinthians 12:4–13, Tuesday, June 2”, 고리도전서 12:4-13, 6월2일 화요일
"은사는 여러 가지이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시고, 섬기는 일은 여러 가지이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시고, 활동은 여러 가지이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일을 하시는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고전 12:4-6, 새번역) 오늘 본문은 은사 이야기이고, 성령강림절에 나누었던 본문입니다. 은사에 대해 그리고 방언에 대해, 성령충만에 대해 바울이 주는 탁월한 가르침은 지금 우리들이 알고 있는 은사와 성령, 방언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바울이 은사를 이야기하면서 하나 됨을 이야기합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이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고, 섬김은 여러 가지이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고, 활동은 여러 가지이지만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세 번 반복됩니다. 다름을 말하는 것 같은데, 결국 같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사람이 모이면 다름이 보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을 잘하고, 어떤 사람은 뒤에서 조용히 일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가 뜨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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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5분 분량


2 Timothy 1:12b–14, Friday, May 29, 디모데후서 1:12b-14, 5월29일 금요일
호박이 열렸어요.심을때까지는 잘 몰랐는데 이렇게 금새 이렇게 열매가 "나는 내가 믿어 온 분을 알고 있으며, 그분은 내가 그에게 맡긴 것을 그 날까지 지켜 주실 능력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딤후 1:12b, 새번역) 어제 본문에서 바울은 고난 앞에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 이유가 더 선명해집니다. "나는 내가 믿어 온 분을 알고 있다." 믿음의 대상을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온 시간 속에서 알게 된 분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쓴 "알고 있다"는 말에는 긴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그 순간부터, 감옥과 매질과 파선과 돌에 맞는 시간을 지나오면서 쌓인 앎입니다. "그분은 내가 그에게 맡긴 것을 그 날까지 지켜 주실 능력이 있다." 맡겼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께 무언가를 맡겼습니다. 자기 생명인지, 자기 사역인지, 자기가 이루지 못한 것들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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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4분 분량


“2 Timothy 1:8–12a, Thursday, May 28”, 디모데후서 1:8-12a, 5월28일 목요일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한 일에 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목적과 은혜에 따라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딤후 1:9, 새번역)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씁니다. 감옥에서 쓴 편지입니다. 처형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편지의 톤이 생각보다 담담합니다. 오히려 디모데를 걱정합니다. 디모데가 복음을 부끄러워할까봐, 감옥에 갇힌 자기를 부끄러워할까봐. 바울이 자기 처지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디모데가 흔들릴까봐 걱정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이 말이 낯설지 않습니다. 신앙을 드러내는 것이 어색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모임에서. 내가 예수 믿는다는 것을 굳이 말해야 하나 싶은 순간. 십자가 이야기를 꺼내기가 왠지 민망한 순간. 바울 시대에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감옥에 갇힌 사람을 따르는 것이 당당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9절에서 부끄러워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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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8일5분 분량


John 7:37–39, Wednesday, May 27, 요한복음 7:37-39, 5월27일 수요일
37명절의 가장 중요한 날인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 일어서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로 와서 마셔라. 38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이 말한 바와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39이것은, 예수를 믿은 사람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이다.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사람들에게 오시지 않았다.(요한복음 3:38-39) 오늘 본문의 배경은 초막절 마지막 날입니다. 유대절기 중에 가장 큰 날이라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전통에 따라 실로암 못에서 물을 길어다가 성전 제단에 붓는 의식이 하는 날이었습니다. 물을 붓는 의식은 광야에서 반석을 쳐서 물을 내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의식이 절정에 달한 바로 그 순간에 예수님이 일어나서 외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타이밍이 참 절묘합니다. 제사장이 물을 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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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7일4분 분량


로마서 8:26-27, 5월26일 아침묵상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6, 새번역) 기도를 못 하겠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뭘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입니다. 무릎을 꿇고 앉았는데 말이 나오지 않는 그 순간. 기도하러 왔는데 멍하니 있다가 일어나는 때도 있는데,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도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고, 목회자도 예외가 없습니다.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정확히 그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한다." 바울의 고백입니다. 로마서를 쓴 바울이, 세 차례 선교여행을 다닌 바울이, 기도할 바를 모른다고 합니다. 이상하게 이 런 말들이 위로가 됩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어서. 기도할 바를 모른다는 것이 신앙이 약해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현실이 너무 복잡해서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풀려야 하는지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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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2분 분량


John 3:31–36 | Wednesday, May 20, 요한복음 3:31-36, 5월20일 수요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요 3:35, 새번역) 오늘 본문은 세례 요한의 마지막 증언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 때문에 불안해합니다. 선생님, 사람들이 다 예수에게로 갑니다. 그런데 요한의 반응이 담담합니다. 오히려 기뻐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자기 자리를 내어주는 것, 무대에서 내려오는 것, 그것도 기쁘게 그리 할 수 있는 것은 보기 드문닙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요한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가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신랑이 아니라 신랑의 친구라고 했습니다. 친구는 신랑을 위해 기뻐합니다. 자기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비교당해도, 밀려나도, 사람들이 떠나가도 마땅히 그렇게 되는 것에 마음을 두고 있다면 무엇이 더 중요한지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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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5분 분량


1 Peter 4:7–11, Tuesday, May 19, 베드로전서 4:7-11, 5월19일 화요일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벧전 4:10, 새번역)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쓸 때의 긴박함이 느껴집니다. 곧 끝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그 다음에 하는 말이 좀 의외입니다. 긴박한 상황에서 보통은 특별한 것을 요청할 것 같습니다. 대단한 결단, 큰 헌신, 거창한 무언가. 그런데 베드로가 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고, 서로 사랑하고, 불평 없이 대접하고, 은사대로 봉사하라. 일상적인 것들입니다. 끝이 가까운 시대에 요청되는 것이 특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일상의 신실함이라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뜨겁게라는 단어가 원어로는 근육을 최대한 늘려서 힘을 쓴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힘을 써야 하는 사랑입니다. 노력이 필요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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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5분 분량


Ephesians 2:1–7, Friday, May 15, 에베소서 2:1-7, 5월15일 금요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 2:4, 새번역) 오늘 본문은 "너희가 허물과 죄로 죽었더니"로 시작합니다. 좀 무거운 시작입니다. 죽었다는 말입니다. 숨이 멎은 것이 아니라, 방향이 잘못된 채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르고, 육체의 욕심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읽으면서 이게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향을 잃고 살아가는 것, 무엇이 중요한지 모른 채 바쁘게 움직이는 것, 이것이 죽음의 다른 이름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바울이 여기서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살았으며." 나도 그랬다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도 그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과거를 알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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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4분 분량


Luke 24:44–53, Thursday, May 14, 누가복음 24:44-53, 5월14일 목요일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눅 24:48, 새번역) 누가복음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계신 마지막 순간입니다. 곧 떠나실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하시는 일이 좀 인상적입니다. 거창한 의식이 아니라 말씀을 풀어서 전하십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을 이야기하시면서, 이 모든 것이 나에 관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십니다.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하신다". 성경을 이해하는 것이 단순히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열려야 보이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본문을 읽어도 어떤 날은 그냥 지나가고, 어떤 날은 말씀이 심장에 꽂히는 경험을 합니다.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늘 궁금했는데, 오늘 본문이 그 답을 주는 것 같습니다. 내가 여는 것이 아니라, 열어주시는 분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성경필사를 해보시면 필사에 힘을 쓰느라 본문내용이 들어오지 않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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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일4분 분량


John 16:16–24, Wednesday, May 13, 요한복음 16:16-24, 5월13일 수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요 16:20, 새번역)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제자들이 서로 묻습니다. "조금 있으면이 무슨 말인가?"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당연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십자가와 부활을 가리키는 것인데, 그것을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냥 수수께끼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묻지 못합니다. 서로 수군거리기만 합니다. 왜 직접 물어보지 못했을까요. 이미 몇 번 물어봤다가 이해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어서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모른다는 것을 드러내기가 민망해서일 수 있습니다. 이것도 우리와 닮아 있습니다. 모르면서도 아는 척, 이해 못했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고 들어본것처럼, 아는것처럼 구는 것, 한번쯤을 경험해본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그 마음을 아십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울고 애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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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4분 분량


“1 Peter 3:8–12, Tuesday, May 12”, 베드로전서 3:8-12, 5월12일 화요일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벧전 3:8, 새번역) 오늘 본문은 짧습니다. 그런데 읽으면서 좀 무거워졌습니다. 짧은 만큼 더 직접적으로 와닿았습니다. 베드로가 말하는 것들이 거창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라. 동정하라. 형제를 사랑하라. 불쌍히 여기라. 겸손하라. 들으면 다 아는 말들입니다. 교회 다니면서 수도 없이 들어온 말들입니다. 그런데 왜 이게 이렇게 어려울까요. 같이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맞지 않는 사람이 생깁니다. 같은 예배를 드리고, 같은 말씀을 듣는데,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상처를 받는 것이 세상에서 받는 상처보다 더 오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다를 줄 알았는데, 라는 배신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이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그런 공동체였을 것입니다. 흩어진 나그네들이 모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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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일4분 분량


Acts 27:13–38, Friday, May 8, 사도행전 27:13-38, 5월8일 금요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행 27:22, 새번역) 남풍이 순하게 불기 시작했습니다.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몰아칩니다. 순식간에 상황이 뒤집힙니다. 배는 통제를 잃었습니다. 짐을 바다에 던집니다. 배의 기구들도 던집니다. 며칠째 해도 별도 보이지 않습니다. 누가 봐도 끝난 것 같은 상황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였다." 여기서 바울이 일어납니다. 분위기를 읽고 조용히 있을 법도 한데, 바울이 먼저 말을 꺼냅니다. 솔직하게 시작합니다. "여러분, 내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피해를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좀 뼈가 있는 말입니다. 그래도 맞는 말이니까. 그런데 바울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안심하십시오." 바울이 안심하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다. 간밤에 천사가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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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4분 분량


Acts 27:1–12, Thursday, May 7, 사도행전 27:1-12, 5월7일 목요일
"항해가 이미 위험하여 금식하는 절기도 이미 지났으므로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행 27:9, 새번역) 바울이 배를 탑니다. 죄수 신분으로. 로마로 압송되는 길입니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는데, 상황은 전혀 녹록지 않습니다. 계절이 좋지 않습니다. 항해하기엔 이미 늦은 시기입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이 항해가 위험합니다. 짐과 배뿐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피해가 있을 것입니다." 경고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듣지 않습니다.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신뢰합니다. 전문가의 말을 들은 것입니다. 항해 전문가들이 괜찮다고 하니까요. 게다가 지금 정박해 있는 항구가 겨울을 나기에 좋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더 좋은 항구가 있다고 합니다. 뵈닉스라는 곳입니다. 합리적인 판단처럼 보입니다. 전문가들도 동의합니다. 더 나은 곳이 눈앞에 보입니다. 남풍도 순하게 불기 시작합니다. 출발하기에 완벽한 조건처럼 보였습니다. 여기서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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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7일3분 분량


John 8:31–38, Wednesday, May 6, 요 8:31-38, 5월6일 수요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2, 새번역)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너무 많이 들어서 오히려 잘 안 들리는 말이 있습니다. 이 구절이 그렇습니다. 현판에도 새겨지고, 졸업식 축사에도 등장하고,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본 말. 그런데 오늘 이 말이 나온 맥락을 보니,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발끈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우리가 언제 종이었냐는 것입니다. 자존심이 상한 겁니다. 그런데 이게 좀 이상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조금만 알면 이 말이 얼마나 어색한지 바로 보입니다. 이집트에서 노예였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로마의 지배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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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6일3분 분량


Acts 7:44–56, Tuesday, May 5, 사도행전 7:44-56, 5월 5일 화요일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행 7:56, 새번역) 스데반의 설교가 끝을 향해 달려갑니다. 앞에서는 아브라함, 요셉, 모세 이야기를 차분하게 풀어냈는데, 여기서부터는 톤이 달라집니다. 직접적입니다. 날이 서 있습니다. "목이 굳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는 언제나 성령을 거역하는구나." 공회 앞에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보통 용기가 아닙니다. 스데반이 하고 싶었던 말의 핵심이 여기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증거의 장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지시하신 대로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습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 그리고 사람들은 그 건물 안에 하나님을 가두기 시작했습니다. 스데반은 바로 그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합니다. 하늘이 내 보좌요, 땅이 내 발판인데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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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4분 분량


Acts 7:1–16, Friday, May 1, 사도행전 7:1-16, 5월1일 금요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의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행 7:3, 새번역) 스데반이 공회 앞에 서 있습니다. 고발을 당한 겁니다. 성전을 모독하고 율법을 거슬렀다는 혐의입니다. 대제사장이 묻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냐?" 그런데 스데반의 대답이 좀 특이합니다. 예, 아니요로 대답하지 않습니다. 역사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처음엔 왜 이러나 싶었습니다. 목숨이 걸린 자리에서 갑자기 족장들 이야기를 꺼내다니. 그런데 가만히 읽다 보면, 스데반이 하고 싶은 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늘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일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성전이 없던 시절입니다. 예루살렘도 없던 시절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떠나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떠났습니다. 가나안에 도착했지만, 발 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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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4분 분량


Matthew 20:17–28, Wednesday, April 29, 마 20:17-28, 4월29일 수요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마 20:26, 새번역)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제자들을 따로 불러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말씀하십니다. 잡히고, 넘겨지고, 조롱받고, 채찍질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이다. 사후예언의 내용입니다. 복음서는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기록되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마태복음은 예수님께 일어날 일을 미리 예언하신 것을 교회에 알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일어난 일을 알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수를 믿는 공동체다. 이어지는 다음 장면은 좀 당황스럽게 읽혀집니다.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부탁이 있다고 합니다. "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이 죽겠다고 방금 말씀하셨는데, 그 자리에서 자기 아들들 자리 챙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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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6분 분량


Ezekiel 34:23–31, Tuesday, April 28, 겔 34:23-31, 4월28일 화요일
"내가 그들과 평화의 언약을 세우고, 악한 짐승들을 이 땅에서 없애겠다.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도 안전하게 살고, 숲 속에서도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겔 34:25) 목자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시작이 좀 무겁습니다. 양들을 돌봐야 할 목자들이 오히려 양들을 착취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살진 양은 잡아먹고, 병든 양은 내버려두고, 잃어버린 양은 찾으러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직접 내 양들을 찾겠다." 목자가 일을 못 하면, 내가 목자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목자를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다윗 같은 목자를. 다윗은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다윗 같은 사람, 다윗의 계보에서 올 누군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게 누구인지 압니다. "내가 그들과 평화의 언약을 세우겠다." 이 말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평화의 언약. 요즘처럼 뭔가가 계속 흔들리는 시절에, 언약이라는 단어가 묵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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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3분 분량


1 Peter 2:9–12, Thursday, April 23, 벧전 2:9-12, 4월23일 목요일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벧전 2:9, 새번역) 이민자로 산다는 것은 어딘가 늘 어중간한 느낌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에 가면 미국 사람입니다. 한국말을 하면서도 가끔 단어가 막히고, 영어를 하면서도 뉘앙스가 아슬아슬합니다. 명절이 되면 고향 생각이 나는데, 막상 고향에 가면 내 자리가 없습니다. 여기가 집인지, 거기가 집인지. 오래 살수록 이 질문은 답이 나오기는커녕 더 묘해집니다. 어제 최병현 교수님이 번역한 징비록 출판 기념회에 잠깐 시간을 내서 다녀왔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한글로도 읽어본 적 없는, 영어로 번역된 책을 기념으로 받아 들고는 왠지 뿌듯함이 밀려왔습니다. 우리들이 깊이 아는 걸, 이제야 접하는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다는 것. 여전히 뿌리는 한국이라는 것에 조용히 동의한 순간이었습니다. 어중간한 것 같지만, 뿌리는 분명히 있습니다. 베드로가
Bkumc 열린교회
4월 23일4분 분량


John 21:1-14 | Wednesday, April 22, 요 21:1-14, 4월22일 수요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요한복음 21:12) 실패한 밤이 있습니다. 열심히 했는데 아무것도 없는 밤. 베드로와 제자들이 딱 그랬습니다. 밤새 그물을 던졌는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부 출신들이, 자기가 제일 잘 안다는 바다에서, 한 마리도 못 잡은 것입니다. 이런 밤이 얼마나 긴지는 경험해본 사람은 압니다. 노력이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때의 그 공허함.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신 곳이 바로 그 자리입니다. 화려한 성전도 아니고, 준비된 예배 자리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새벽 바닷가입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입니다. 별 기대 없이 던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물이 올라오지 않습니다. 물고기가 너무 많아서. 요한이 먼저 알아봅니다. "주님이시다." 그 말에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듭니다. 좀 웃깁니다. 뛰어들려면 옷을 벗어야 빠른데, 겉옷을 두르고 뛰어들다니.
Bkumc 열린교회
4월 22일3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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